문화기획


설 차례상 이야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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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인 것보다 정성, 정답은 없다

설 차례상은 어떻게 차리는 것이 정답일까. 가문의 전통과 지방의 관습에 따라 각각 다른 차례상. 차례상에 도 정답이 있을까. 차례는 명절(名節)에 지내는 제사다. 명절 절(節)자를 써서 절사(節祀)라고도 부른다. 명절은 한 해와 계 절과 절기가 순환하며 바뀌는 우주의 시간이다. 설날, 대보름날, 단오, 추석, 동지 등이 대표적이다. 각 명절 에 조상에게 시절 음식으로써 그 세월의 변화를 고(告)하고 하늘과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제사가 차례인 셈 이다. 차례의 글자 뜻은 차(茶)로 지내는 제사, 곧 차사(茶祀)다. 요즘은 차례에서 차를 올리지 않는다. 아 마도 차는 예전부터 매우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지 싶다.

설 차례상에 정답이 있을까
그렇다면 차례상 차리기에 역사적 근거가 있을까.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색 음식은 동쪽에 놓고 흰색 음식은 서쪽에 놓는다. 조율이시(棗栗梨柹), 대추-밤-배-감 순서로 올린다. 두동미서(頭東尾西), 좌포우 혜(左脯右醯), 어동육서(魚東肉西)… 차례상을 말할 때 등장하는 표현이다. 이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경우 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뚜렷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역사적 근거를 찾고자 한다면 중국 송나라 때 기록인 「주자가례」를 들 수 있다. 주자가 쓴 유교 예법의 기 준이 되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에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규칙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 후기에 쓰여진 「사례편람」도 마찬가지다. 과일을 제일 하단에 놓는다고 쓰여 있지만, 어떤 색의 과일을 놓 는지, 순서가 어떤지 정해놓지 않았다. ‘어동육서’라는 용어는 아예 발견조차 되지 않는다. 이를 통해 볼 때 「주자가례」와 「사례편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성’을 다하되 ‘간소하게’ 지내라는 것. 조선시대 퇴계 이황은 「퇴계문집(1600년)」에서 “음식의 종류는 옛날과 지금이 다르기 때문에 예전과 똑 같이 할 수는 없다”고 전한다. 시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율곡 이이도 「격몽요결」에서 “제사는 사랑과 공경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을 위주로 할 뿐이다”라고 적었다. 형식보다 예와 정성을 본질로 여긴 것이다.

그래도 궁금한 차례상 음식에 담긴 비밀
국립민속박물관 등에 따르면 대추는 자손의 번창을 상징한다고 한다. 대추는 한 나무에 셀 수 없이 많은 열매가 열리고 꽃 하나가 피면 반드시 열매 하나가 열린 후 꽃이 떨어진다. 이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반 드시 자식을 낳고 죽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열매에 비해 씨가 크고 단 하나여서 임금을 상징하 기도 한다. 밤은 조상과의 영원한 연결을 의미한다. 다른 식물의 경우 나무를 길러낸 첫 씨앗은 땅속에서 썩어 없어져 버리지만 밤은 땅 속의 씨밤이 생밤인 채로 뿌리에 달려 있다 나무가 자라 씨앗을 맺어야 비로소 씨밤이 썩 는다. 즉, 밤은 자손이 내려가도 조상은 언제나 자신과 연결돼 함께 이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죽은 사 람의 위패인 신주를 밤나무로 깎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은 가르침의 중요성이다. 씨앗을 심은 데서 감나무가 나지 않고 대신 고욤나무가 난다. 그래서 이 고욤나 무가 3~5년쯤 자랐을 때, 기존의 감나무 가지를 잘라 이 고욤나무에 접을 붙여야 그 다음 해부터 감이 열린 다. 감나무는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워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 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 데는 생가지를 칼로 째 다시 접붙일 때처럼 아프지만 그 아픔을 겪으며 지혜를 배워야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배는 지혜로운 삶을, 사과는 집안의 화목을 상징한다. 도라지와 시금치, 고사리의 삼채는 과거와 현재, 미래 를 의미한다. 이 세 가지 나물은 음양오행설의 오방색 중 흰색, 청색, 흑색을 의미할 뿐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를 뜻한다. 뿌리채소 도라지는 조상을, 줄기채소 고사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잎채소인 시금치는 미래의 후손을 상징한다. 도라지는 ‘도를 알지→돌아지→도라지(道我知)’로 바뀌어 도(道)를 알라는 뜻을, 고사리는 하늘로 뻗어가는 기운의 형상을 하면서도 손(手)의 모양과 닮아 높은 이치가 담긴 일을 한다는 의 미를 가진다. 또 천지인(天地人)을 상징한다는 의미도 있다. 도라지는 땅을, 고사리는 사람을, 시금치는 하 늘을 뜻한다는 것.




글 원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