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중심
한 사회의 건강함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지 표는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성서에, 추수할 때 밭모퉁이를 수확하지 말고, 포도 수확할 때 모두 따지 말고 남겨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레위기 19,9-10). 이 말씀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 동시에 더불어 살지 못하면 아무도 살 수 없기 때문 에 내린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인간은 더불어 살도 록 지음 받았습니다. 가을에 감을 수확하고 몇 알은 까치밥이라고 남겨놓는 풍습은 보기에도 넉넉하지 만 사람뿐만 아니라 뭇 생명들과도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우리 선조들의 깨달음이 담겼습니다. 우리 사회는 나눔이 잘 이루어지는가? 우리 사회 는 건강한가? 이러한 질문에 이내 가슴이 답답해집 니다. 우리나라는 2017년 GDP기준 세계 12위 경 제대국입니다. “정부 덕분에 매달 용돈도 받고 전 기도 쓰고 이렇게 살기 좋아졌어.”라고 말씀하시던 원주의 한 어르신의 말씀이 서글프게 떠오릅니다. 이분은 우리나라가 노인자살률 세계 1위임을 아실까? 강원도가 전국에서 노인자살률 1위임을 아실 까? 또 원주가 강원도에서 노인자살률 1위임을 아 실까? 우리나라 폐지수거는 39% 가량이 80세 이 상 노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많은 분 들이 복지사각지대에 내몰려 있거니와 이분들이 한 달 동안 노동해서 버는 돈은 겨우 10만원 남짓 합니다. 무슨 문제일까요.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도둑질한 박정희는 정권 초 기부터 특정 재벌들을 비대하게 키우는 정책을 펼 쳤습니다. 한국인들의 양질의 노동력을 착취하였 고 재벌들로 하여금 땅 짚고 헤엄치기로 돈을 긁어 모으게 해주었습니다. 이로써 재벌과 정치권과의 유착관계는 견고해졌고, 재벌은 정치권에 그 은혜 (?)를 열심히 갚아야 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 까? 흔히들 낙수효과를 내세우지만 이루어지지 않 았습니다. 오히려 돈이 돈을 버는 구조, 부의 세습 구조만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 시다. 나눔이란 남아도는 것을 잘라서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소중한 것을 건네주는 일입니 다. 전자는 버리는 것이지 나눔이라 할 수 없습니 다. 폐지 줍는 노인의 문제는 구조악에 대한 무관심 의 결과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제 대기업 중심이 아닌 협동조합, 시민연대정신이 살아있는 나눔 중 심의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축적된 적폐도 함께 청산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 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습니다. 맑은 물을 마시고 싶습니다. 후쿠시마 방사능에 오염된 식품이 아니 라 건강한 먹거리를 먹고 싶습니다. 몬산토 구내식 당에서조차 반입이 금지된 GMO 농산물을 먹고 싶 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것들을 이웃과 나누는 기쁨 을 누리고 싶습니다. 몇몇의 이익과 탐욕을 충족시 키는 과정과 결과에서 발생하는 부의 편중과 착취 가 세상 모든 비극의 원인이며 환경파괴의 주범이 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나눔은 사람과 환경을 모두 를 살리는 처방입니다. 나눔은 현금과 물질 따위에 국한 되지 않습니다. 나눔의 근본적인 취지는 인간의 존엄성이 최우선시 되 는 평등한 세상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민주시민들이 정치권을 압박하여 분배의 정의를 실 천하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몇몇의 이익을 위한 무 분별한 개발공사들을 감시해야 합니다. 외로운 노 인들의 말벗되어 드리기, 우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속사정 들어주기, 억울한 이들 편 들어주기, 정 의를 외치는 이들과 연대하기 등등은 나눔의 마음 이 있다면 누구나 실천 가능합니다. 그러나 나눔의 본질은 참사랑이요, 자신의 가정과 이웃 속에서 양 심성찰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성서에 예수께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 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오 25:40)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 억 울한 사람, 보잘 것 없는 사람은 늘 우리 곁에 있습 니다. 눈을 돌리지 않는다면 귀를 막지 않는다면 우 리는 늘 그분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그분의 음성을 들 을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
글 김규돈 성공회원주나눔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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