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


강원의 전통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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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술의 향기로운 유혹


해모수와 유화, 그리고 주몽

천제의 아들 해모수는 자신에게 맞는 왕비가 필요 했다. 그렇지만 해모수는 자신이 흠모하는 여인을 왕비로 맞아들일 용기는 부족했다. 그때 해모수의 머리에 한 가지 묘수가 떠올랐다. 지금 같으면 경을 칠 일이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술에 관한 한 너무나 도 관대한 나라, 백의민족이었다. 그랬으니 수천 년 전 권력의 정점에 서있던 사람이야 오죽했을까. 「동국이상국집」(권3) 에 따르면 하백의 딸 유화와 훤화, 위화 세 자매가 웅심연에 나와 목욕을 하고 있었다. 사냥 나왔던 해모수가 보고, 한 여자를 얻 어 후사를 이어야겠다고 주위에게 말하고는, 말채 찍을 땅에 그어 한 궁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속 에 세 개의 자리를 마련하고 술상을 준비했다. 하백 의 세 딸이 술을 마셔 크게 취한 때에, 해모수가 갑 자기 문을 닫아 막으니, 두 아우는 빠져나가고 언니 유화만 잡혔다. 그렇게 해모수와 유화가 동침해 낳 은 사람이 바로 주몽이다. 술이 등장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다. 고대 삼국시대는 모두 술에 관한한 일가견이 있었다. 고구려는 발효 강국으로 중국의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고구려인은 장양(醬釀)을 잘한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백제는 중국 「주서」에 ‘백제의 주조 기술이 중국과 대등’ 하다고 나와 있 으며 신라는 당나라 시인 옥계생이 「지봉유설」에 서 ‘한 잔 신라주의 기운이 새벽바람에 쉽게 사라질 까 두렵구나’라고 읊었다.

우리 술의 발전

통일신라로 들어 농경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곡주 가 나온다. 이때부터 상류층은 ‘청주’를 즐기기 시 작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술의 원형이 완성된 시 기는 바로 고려시대다. 불교가 번창하면서 양조업 이 ‘사찰’을 중심으로 운영됐고 사찰 소유의 토지에 서 생산되는 곡물로 술을 빚어 판매했다. 약재를 혼 양하여 발효, 증류하거나 침출하는 ‘약용혼양주조 법’을 비롯해 과실을 혼양해 발효, 증류하거나 침출 하는 ‘과실혼양주조법’ 등이 나온다. 여기에는 국화 주와 죽엽주, 백자주, 포도주 등이 있다. 막걸리의 원조도 고려시대에 나왔다. 고려시대 귀족이 즐기 던 최고급 탁주, ‘이화주’가 바로 그것이다. ‘배꽃’이 필 무렵부터 담근다고 해서 ‘이화주(梨花酒)’라는 이름이 붙었다. 술 색깔이 희면서 주질은 숟가락으 로 떠먹을 수 있을 정도로 걸쭉해 마치 현대의 요거 트와 같은 독특한 특성을 지닌 고급 막걸리다. 이화 주는 「수운잡방」, 「요록」, 「주찬」 등 옛 주요문헌 에도 자주 등장할 정도로 옛 선조들이 즐겨 마신 탁 주로 고려시대부터 음용 되었으며 서민층보다는 양반가에서 즐겨 마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우리 술의 전성기는 조선시대다. 집에서 빚은 술 ‘가 양주(家釀酒)’ 문화가 발전하는 시기다. 다양한 원 료와 술을 빚는 기술의 고급화가 이뤄지는 시기이 기도 하다. 조선 후기에는 지방과 집안마다 가전비 법(家傳秘法)으로 이어진 명주가 600여 종에 달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로 들어서면서 우 리 술은 점점 사라져 간다. 일본의 우리 술 말살 정 책이 그 원인이다. 일제는 세수 확대를 위해 1909 년 조선총독부에 의한 ‘주세법’ 공표에 이어 1917 년에는 ‘가양주’ 제조가 전면 금지되기 때문이다. 결국 1907년까지 여섯 집에 한 집 비율로 빚었던 가양주는 1930년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여기에 1965년 양곡관리법이 제정되면서 식량난 해소를 위해 쌀 등 곡식을 원료로 한 양조가 전면 금지, 희 석식 소주가 확산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아시안게 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인에게 선보일 우리 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1985년 문화재관리국 은 서울 문배주를 비롯 면천 두견주, 경주 법주 등 전통민속주 13종을 지정한다. 1994년에는 약주 공급구역 제한제도를 폐지하고 2001년 탁주 공급 구역 제한제도 역시 폐지된다. 2009년 저도주 문 화와 막걸리 열풍이 일면서 우리 술에 대한 관심과 전통주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일어난다.


강원도의 전통주

강원도는 오래전부터 술의 소재로 쌀과 옥수수, 감 자 등이 주원료로, 밭작물과 산야초가 술의 부원료 로 활용돼 기능성 높은 전통주가 많았다. 강원도에 서는 다양한 밭작물과 산야초가 많이 생산되고 있 으며 감자와 옥수수 생산량은 한때 전국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감자술과 옥 수수술, 수수술 등은 민속주로 지정됐지만 현실적 인 지원이 없어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등 전통주의 보존 및 육성이 매 우 열악한 상황이다. 강원도의 대표적 전통주인 감 홍로는 현재 경기도에서 생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전통주의 품질고급화로 국제행사의 만찬 주로 선정되는 사례도 있다. 국제행사의 만찬주에 선정돼 큰 효과를 거둔 ‘천년약속’의 매출은 2004 년 4억 원에 불과했지만 APEC 정상회의 공식만찬 만찬주에 선정된 홍보효과에 의해 2006년 매출이 185억 원으로 급상승했다. 만찬주의 선정은 전통 주의 우수성을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는 홍보, 마케 팅이 될 수 있으며 대량판매까지 이뤄질 수 있다.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에서는 오미자가 원료인 ‘오미로제 스파클링’과 쌀이 원료인 ‘복순도가 손막 걸리’가, 2011년 G20 정상회의에서는 포도가 원 료인 ‘온다도로’와 ‘바소’가 선정됐었다.


그렇다면 강원도에는 어떤 전통주들이 있을까.

춘천의 경우 백미와 소맥, 누룩, 옥수수를 주요 재 료로 이용, 옥수수 특유의 고소한 향과 담백한 맛이 특징인 ‘옥로주’와 찹쌀과 옥수수를 원료로 하는 ‘강냉이술’이 있다. 강냉이술은 알코올 도수 16%인 술로 강원도 산간지방의 농부와 아낙들이 즐겨 마 신 민간전래의 술이다. 마실 때는 부드럽게 취하고 깰 때는 편안하여 숙취 후유증이 전혀 없는 술로 여 성들의 미용주로도 사랑받는다. 원주는 찹쌀과 엿기름, 누룩, 이스트, 옥수수, 감자 를 원료로 한 황골엿술이 대표적이다. 치악산 자락 의 황골마을에서 고아낸 엿을 이용해 만든 엿술은 붉은 빛이 감도는 담홍색을 띠며 엿기름의 달콤함 을 느낄 수 있다. 강릉과 횡성에는 궁중에서 반가로 전해진 200년 내력의 가양주인 ‘율무술’이 있다. 율 무의 영양과 효능이 살아있으며 최근 ‘효자술’로 더 욱 잘 알려진 술이기도 하다. 강릉에는 또 감자를 누룩과 함께 발효시켜 만든 감자동동주가 있다. 정 선에는 옥수수 엿술인 앉은뱅이술이 있는데 마시 기 좋은 달짝지근한 맛으로 조상 전래의 향수를 느 낄 수 있는 토속주다. 마시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일어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앉은뱅이 술이라고 불린다. 삼척에는 질거나 된밥이어서 상에 올리기 난처한 밥이나 쉬게 생긴 밥을 이용해 빚는 ‘불술’이 있다. 밀기울로 띄운 섭누룩은 까다롭게 빚어야 하 며 술을 앉힌 단지는 짚불을 피워 술을 삭히면서 완 성된다. 이와 함께 ‘가곡호도동동주’는 제사상이나 명절 차례상에 올리던 술로 약간 신맛이 나며, 부정 을 타면 술이 담가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온다. 태백에는 쌀과 감자, 누룩으로 밑술을 만 들고, 쌀, 감자, 누룩을 다시 첨가해 덧술을 빚어 여과한 후 증류한 감자소주가 있다. 독특한 감자향이 느껴지고 뒷맛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천에 는 치매에 효과적이고 변비와 혈압치료에 효과가 있는 솔잎을 이용한 솔잎동동주와 부모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피와 허벅지살을 떼어내 봉양한 이효 종 가문의 술인 ‘옥선주’가 있다. 옥수수 엿물에 누 룩을 담그고 엿기름을 넣어 단맛이 나게 빚어 발효 시키고 이를 증류한 후 갈근과 당귀를 넣고 1~3개 월 숙성한다. 알코올 농도 40%로 시원한 청량감이 일품이며 특히 부인병 치료와 보혈작용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횡성에는 밀기울로 누룩을 만들고 솔잎과 당귀 등 을 넣어 독특한 맛을 내는 ‘동동주’, 평창에는 감자 와 멥쌀로 제조한 약술인 ‘서주(감자술)’가 있다. 막 걸리와 같은 탁주 형태로 마셨다. 대관령 감자를 껍 질을 까서 찐 다음 밑술을 부어 보름정도 발효시킨 다. 담백하면서도 단맛이 나 뒤끝이 깨끗하고 은은 하게 취하며 산성체질을 알칼리성의 체질로 바꿔 주는 효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철원에는 농가에서 상하기 전의 남은 찬밥을 삭혀 누룩을 제 조하고 엿을 고아 약주로 만들어 마신 ‘찹쌀 엿술’ 과 우리나라 3대 명주 중 최고로 꼽히는 ‘감홍로’가 대표적이다. 감홍로의 ‘감’은 단맛을, ‘홍’은 붉은색 을, ‘로’는 증류된 술이 항아리 속에서 이슬처럼 맺 힌다는 뜻으로 독특한 향이 어우러져 미각과 시각, 후각을 만족시키는 술이다. 양구에는 직접 산에서 채취하여 말린 삼지구엽초와 고추를 첨가해 제조 한 ‘삼지구엽초주’가 유명하다. 맵고 단맛이 나며 중풍을 치료하고 정력을 보강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양양에는 제피, 존피, 전피라고도 하는 초피의 잎을 이용해 만든 ‘초피주’와 소화흡수 가 잘 되고 저장성이 좋은 늙은호박을 이용해 만든 ‘호박동동주’가 있다.




​글 원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