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


쌀로술 쌀로초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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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로술 쌀로초”

“지역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활용해 우리 전통술을 빚고 싶어요.” 원주 신림면 용암리에 터를 잡고 산지 벌써 20여 년이 되어가는 영농조합법인 쌀로술쌀로초 이사 장 이규옥씨. (그는 1999년 이곳에 자리를 잡았 다.) 우리의 전통술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지만 이제야 어느 정 도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최종적으로 제조 허가만 받으면 2018년 설 이전 에는 판매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정절차 는 대부분 마무리됐는데 마지막 제조 허가 받기가 수월하지 않네요.”
지난 11월 27일 이 이사장의 집을 찾았을 때는 서 울 식약청에서 현지 실사를 나온 날이었다. 그의 오 래된 집 옆으로 작은 술도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건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는데 발효실 구들 장 마감을 황토로 했더니 보완 판정을 받았어요. 공 사를 하다가 만 것 같다며 콘크리트로 마감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이것만 마무리되면 제조하는 데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것 같아요.” 이 이사장은 본격적인 판매가 시작되면 2가지 전통술을 내놓을 예정이다. 당연히 쌀로 만든 순곡주 와 지역에서 생산되는 자색고구마를 활용한 자색 고구마주가 그의 야심작이다. 자색고구마는 신림면과 귀래면에서 점점 생산이 늘어나고 있는 농작물 중 하나다. 당초 전통술 제조 허가를 받을 때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전통술을 만 들겠다는 각오였다.

“자색고구마주는 쌀 90%에 자색고구마 10%가 들 어간 순 우리 술이라고 보면 됩니다. 색이 예뻐서 젊 은 여성층을 대상으로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할 것 같아요. 알코올 도수도 12%정도여서 적당한 것 같 고, 맛도 쓰지 않아서 여성들이 많이 좋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평소에도 술을 좋아했던 그가 본 격적인 술 빚기에 뛰어든 것은 일본에서의 경험이 한몫했다. 아니, 어쩌면 술을 빚기 위해 일본에 갔 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일본 오사카 지역으로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었는 데 그곳에서 6개월 가량 있으면서 충격을 받았어 요. 일본 사람들은 농사철에 열심히 농사를 짓고 겨 울이 되면 양조장에서 술을 빚으며 동네에서 한 철 을 보내고 있었죠. 하지만 우리 농촌은 겨울이 되면 마땅한 일거리가 없어 많은 농민들이 외지로 막노 동을 하러 가거나 일자리를 찾아 떠납니다. 지역에 서 양조장을 하면서 지역 농산물을 활용하고 일자 리도 제공할 수 있으면 일거양득이어서 좋겠다라 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동네 형님들과 논의도 많 이 했고요.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 각입니다.” 일본에서 부러운 것 중 하나는 술을 빚는 것 자체가 굉장히 엄격하다는 것이었다. 비록 동네 농민들이 술 제조에 참여하지만 시스템적으로 완벽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이 이사장이다. “일본의 경우 10월 말 추수가 끝나면 술 빚을 준비와 함께 다음 해 4월 초까지 술을 만들어요. 양조장 에서 합숙까지 하는 경우도 있지요. 술 제조를 총괄 하는 총사령관이 있고 부대장도 있는 등 시스템적 으로 완벽해요. 명절에 잠깐씩 집에 가는 경우를 제 외하고는 거의 외출도 하지 않고 술 빚는데 온 정성 을 쏟더라고요. 여기에 고만고만한 양조장들이 일 본에는 면 단위마다 하나씩 다 있어요. 괜히 세계적 인 술로 사케가 인정받는 것이 아니었던 겁니다. 또 지역의 양조장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지역 주민들 도 지역 전통술을 사줍니다. 로컬의 개념에 정확하 게 들어맞고 일본인들의 일상입니다. 이런 여러 가 지 상황들이 잘 들어맞아 그들이 존경스러울 정도였어요.” 술을 빚을 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 다. 이 이사장은 신림면 지역만 사용하는 상수도에 지하수를 가둬 살짝 살균한 물을 다시 끓이고 식혀 서 쓰고 있다. 3~4일 물을 가둬두고 위의 물만 사 용한다. 지금의 물맛은 예전 어린 시절 먹던 물맛이 아니라서 안타깝기만 하다고 이 이사장은 말한다. “일본 양조장에서 쓰는 물은 물맛이 좋다고 금방 느 껴지더라고요. 이런 물맛을 신림에서도 느낄 수 있 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지요.” 지역에는 술을 빚는 야인들이 많다며 본인은 아직 도 많이 배워야할 사람이라고 낮은 겸손함까지 보 이는 이 이사장은 “술을 빚기 시작하면서부터 희석식 소주는 멀리하고 있어요. 될 수 있으면 우리의 전통술을 마시려고 하고요. 어쩔 수 없이 먹어야할 때도 있지만 그러면 여지없이 탈이 나는 것 같습니 다. 체질이 전통주쪽으로 넘어간 것 같아요. 또 어 디가서 술을 빚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힘들 어요. 지역에 워낙 술을 잘 빚는 야인들이 많이 있거 든요. 아직 많이 배워야 합니다.” 

까칠한 수염을 깎지 못하고 배웅을 하는 이 이사장 의 환한 미소에서 우리 전통술의 미래가 엿보인다. 전통술 이전에 지역의 농산물을 살리고 함께 공생 을 도모하는 그의 굳은 의지가 붉게 물들어가는 석 양의 그윽함을 닮았다.

글 · 사진 원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