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반, 안개가 자욱한 들길로 나갔다. 고이 자고 있는 이슬방울들이 행여나 깰까봐 배추 랑 무 잎도 조심스레 숨을 쉬고 있다. 나는 이들을 돌아보며 일일이 눈길을 주면서 축복기도를 한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배추야 잘 크거라 무야 잘 크거라. 감자도 잘 굵어라.” 밤새 이슬을 머금고 훌쩍 자란 작물들이 대견스럽다. 40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농사를 시작했다. 어 떤 친구는 힘들게 그걸 뭇 하러 짓느냐고도 했지만 내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현직에 있을 때보다 수입이 줄었으니 그것도 보충 해야겠고, 또 땀 흘려 일하게 되니 건강에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땅의 정직함과 작 물들의 자라는 모습이 보기 좋기 때문이다. 다행히 2,000평의 땅이 있어서 반은 논으로 반은 밭으로 사용키로 했다. 농사 일 이란 게 도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주말농장 이나 전원주택에서 텃밭에 채소나 조금씩 가꾸어 먹는 그런 호사스런 일이 아니다. 첫째는 작물에 맞는 토양을 만들어야 했다. 나는 언 제 어디에 어떤 작물을 얼마나 심겠다는 작부 체계를 세우고는 토양검사를 한 후 그에 따라 석화와 퇴 비를 넣었다. 1,000평의 밭에 소두엄 30톤을 펴 넣고 트랙터로 갈아 이랑을 만든 후 멀칭을 했다. 봄에는 그곳에 감자, 무, 배추, 고추를 심고 후작(後 作)으로 가을배추와 무를 심기로 했다. 그러나 여기 엔 어려움이 많았다. 첫째 농사 기술도 없고 장비도 없어서 늘 농업 서적을 참고로 하고 장비로 하는 일 은 위탁을 해야 하는데 내가 필요 할 때에 쓸 수 없 는 것이 안타깝다. 또한 병충해 방제, 장마와 가뭄 대비 그리고 잡초제거도 힘들고 또한 판로 개척도 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 금년 봄에는 가뭄이 심했다. 양수 시 설도 스프링클러 장치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파 종한 씨앗들이 발아가 늦어짐에 따라 조바심도 났 다. 그렇다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수도 없고 나로 서는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물을 퍼다 파 종 상에 뿌려주고 시들어가는 고추 포기마다 일일 이 물을 퍼다 주었다. 옛말에 배고픈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과 마른 곡식밭에 물들어 가는 것처럼 기쁜 게 없다고 하더니 물을 주면 마치 목마른 사람 물먹을 때처럼 꿀꺽꿀꺽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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