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


“길 위에 펼쳐진 나의 아름다운 사무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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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장동의 한 순댓국집 앞.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끝난 무렵이라 주변이 한산하다. 곧 약속 시간에 맞추어 우편물을 가득 실은 빨간 오토바이가 한 대 나타났다. 인도의 한쪽에 오토바이를 세우는 것이 아주 능숙해 보였다. 집배원 박원우(44) 씨다. “점심시간에 밥을 같이 먹는 동료인데, 함께 봐도 되겠지요?” 뒤이어 똑같이 생긴 오토바이가 멈춰 서고,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동료집배원 김태륙(36) 씨가 하차했다.

박원우 씨는 자리에 앉으며 익숙하게 순댓국밥을 주문했다. 우편물을 배달하다 보면 제때 점심밥 먹기가 녹록지 않다. “정해진 시간이 없다 보니 시간이 안 맞을 때는 각자 알아서 먹기도 하고, 못 먹을 때도 많습니다.” 끼니를 챙겨 먹더라도 배달 길 도중에 있는 식당에서 간편한 일품요리로 때우는 것이 대부분이다. 오늘 점심 약속이 가능했던 것도 별다른 변수 없이 수월하게 배달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곧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집배원은 보통 직장인들보다 출근이 이르기 때문에, 점심치고는 조금늦은 감이 있다. “업무 시간은 아침 8시부터인데, 좀 더 일찍 7시 반 정도에 출근하기도 해요.” 출근 후, 배달을 시작하기 전에 우편물을 정리해 순서대로 배열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배달뿐만 아니라 우편물의 수집과 분류 작업 역시 집배원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분류를 마치고 난 후, 보통 아침 9시부터 배달을 시작한다.

손 편지 줄어도 등기·택배 늘어나는 추세
그날그날 우편물의 양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만, 별로 없는 날이라도 코스가 순서대로 짜여 있어 전체 거리가 줄거나 하는 일은 없다. 배달을 마치고 나면 오후 3~4시 정도. “명절 전처럼 특히 우편물이 많을 때는 저녁 6시, 7시까지도 배달을 합니다.” 그대로 퇴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무실에 돌아와 수집된 우편물을 분류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다음날을 위함이다. 하루에 몇 통 정도의 우편물을 배달하느냐는 질문에는 정확히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만 5,500여 세대 이상의 가구가 거주하는 태장1동 일대를 박원우 씨와 김태륙 씨 두 명이 담당한다. 한 사람이 실질적으로 최소 5,000명 이상의 우편물을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원주 관내에 집배원은 총 100명. 35만여 명에 육박하는 인구를 생각하면 너무나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다. 손으로 쓴 편지는 거의 없어졌어도 집집마다 고지서는 여전히 많고, 등기나 택배는 갈수록 물량이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원주는 새로 아파트가 들어서거나 택지가 개발되는 경우도 많은데, 현실적으로 즉각 인력이 충원되거나 배달 코스가 재배정진 못한다. “안정되기까지가 힘들죠. 동별·지역별로 팀이 짜여 있어요. 팀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가구가 늘어나거나 인력 공백이 생기면 팀 전체가 힘든 거죠.” 최근 집배원 업무 환경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것이 납득 가는 대목이었다. 비정규직 문제도 있다. “상시집배원이라고, 비정규직이 있죠. 한 20%됩니다.” 대부분 무기계약직인 상시집배원을 거쳐 정규직 집배원이 되는 구조다.

농촌에서는 하루 100㎞ 운행이 기본
김태륙 씨 역시 평창에서 계약직으로 집배원을 시작했다. “정규직 발령이 횡성으로 났고, 집이 있는 원주로 온 지 이제 8개월 정도 됐습니다.” 질문마다 아직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른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계약직 기간을 포함하면 햇수로 벌써 6년째 김태륙 씨는 횡성에서 안흥·강림 지역을 담당했다. 신문 기사에 종종 등장하는 ‘벽지 노인의 생명을 구한 집배원’ 운운 미담의 배경이 될 법한 시골 이었다. “그 넓은 지역을 매일매일 다니는 게집배원이니까요.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처음 알게 되죠. 보면 당연히 조치를 해야 되고요.” 김태륙 씨는 큰일을 겪은 적은 없지만 도망간 개를 찾아준 일은 있다고 웃어 보인다. “어느 집 개인지 대충 다 알잖아요. 길 따라 구석구석 배달을 다니다 보니 보이기에, 집으로 들어다 줬죠.” 집집마다 동네 사람들의 얼굴도 당연히 다 안다. 시골 인심은 넉넉해서, 지나가다 보면 밥 한술 먹고 가라고 부르거나, 농작물을 캐다 말고 가져가라고 안겨주는 일도 많았다. “시골 근무와 도시 근무는 각각 장단점이 있어요. 거기에선 매일 100km 정도를 돌아다녔습니다. 팀에서한 명이 빠지면 120km고요.” 태장1동으로 옮긴 후 거리는 삼분의 일로 줄었지만, 대신 세대 수가 세 배 늘어났다.


우편물 젖을까 일기예보에 민감
사실 집배원의 업무 자체가 편한 일은 아니다. 하루 7~8시간 이상 야외를 계속 돌아다니는데, 매연 때문에 목이 따갑고 햇볕 때문에 집에 돌아가면 팔뚝 언저리가 뜨끈뜨끈 열이 오른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눈이나 빙판길보다 비가 내리는 게 가장 힘듭니다. 시야가 좁아지는데, 다른 운전자들도 마찬가지니 위험하죠. 거기다 종이가 다 젖어 버리니…. 우체통이 아예 없는집도 많거든요.” 젖은 우편물 때문에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요즘처럼 폭우로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 고역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경우엔 하루쯤 미뤘다 맑아지면 한꺼번에 배달을 하기도 하지만, 마냥 이튿날만 믿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집배원들은 항상 일기예보를 봅니다. 레이더로 구름 영상까지봐요.” 하지만 태풍이나 홍수가 극성이어도, 쉴 수는 없다. “십년 넘게 일을 했지만 자연재해 문제로 쉬어본 적은 단 한 번도없어요.” 박원우 씨가 덧붙였다. 그나마 극악한 날씨에도 사고가 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자전거나 보행자를 피하려다 넘어지는 경우는 왕왕 있다.

집배의 신화를 꿈꾸며
최근엔 사람들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집배원을 사칭한 범죄가 많아지다 보니, 극도로 경계를 하는 탓이다. 우편물을 가져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그냥 집 앞에 두고 가라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주택은 좀 덜하지만, 아파트의 경우가 특히 심하다. 그러다 보니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 가장 보람이 느껴지는 것 같다. 박원우 씨는 전날의 감사 인사를 이야기했다. “어제 편지를 배달하는데, 제가 올라오는 걸 보고 계셨나 봐요. 한 아주머니가 매실 액을 타갖고선 나와서 기다리고 계시더군요. 마시고 가라고. 그럴 때가 좋죠.” 둘 다 원래 꿈이 집배원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김태륙 씨는 사무실에서의 업무가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 집배원이 되었다고했다.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측면이 크게 작용했다. 앞으로의 비전도 같은 맥락으로, 열심히 일해 얼른 진급을 하고 싶단다. “‘고객에게 신뢰받고, 국민에게 사랑받는’, 이런 비전을 얘기해야지.” 선배인 박원우 씨가 짐짓 농 섞인 핀잔을 던진다. 박원우씨는 이전 직장에서 채권 관련된 일을 했다. 추심을 하거나 압류를 하는 일이었다. 자꾸 안 좋은 것만 보게 됐다. “이건 다른 사람에게 해코지할 일이 없잖아요. 내가 주면 주는 거지.” 그렇게 집배원이 됐고, 그래서 지금 이 일에 만족하고 있다.
‘제복’이 갖는 힘에 대해서도 자꾸 생각해 본다. 배달을 하다 쓰러진 사람을 보거나,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을 보면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인터뷰의 말미에 김태륙 씨의 개인용 정보 단말기(PDA)가 울렸다. 우편물을 빨리 가져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주소를 확인한 김태륙 씨는 오후 3~4시는 되어야 그쪽 동네에 도착할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통화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가끔 막무가내인 분들이 계세요. 5분이면 되는 거린데 왜 안 되느냐고, 먼저 와 달라고 하시죠.” 결국 고객이 김태륙 씨가 있는 방향으로 오기로 매듭이 지어진 듯했다. 인터뷰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시간이 지체되었다. 어서남은 배달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가 우편물 분류를 마쳐야 한다. 다행히 날씨는 쾌청하다.
박원우 씨와 김태륙 씨가 속한 팀의 이름은 ‘신화’다. 집배의 신화가 되겠다는 뜻이란다. 아침마다 함께 외치는 구호를 다시 한번 외치고 힘내어 길을 떠난다.
“신화! 신화! 파이팅!”
글. 이새보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