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굽이 돌아돌아 세월 품은 길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1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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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20171017_101530.png | 조회수 | 9,656 |
자갈길에 찰박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좋은 길 초행길에 싸리치재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기가 녹록지 않다. 찻길(신림황둔로)을 따라가다 커다란 노란 간판의 공인중개사무소 바로 다음에 나오는 샛길이 싸리치길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온 경우라면 ‘마지’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보이므로 걱정할 것이 없다. 원주굽이길로서의 싸리치옛길 코스는 남쪽으로 100m정도 전인 신림공원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신림공원은 각종 기념탑과 족구장, 꽃동산, 벤치 등이 설치되어있는 자그마한 마을근린공원이다. 부근에 식당이나 편의점 등이 여럿 있다. 싸리치길의 초입은 여느 농촌마을 풍경과 다르지 않다. 시멘트 길의 양 옆으로 밭이 이어지다가, 왼편에 개울을 끼고 골짜기 길이 이어진다. 이윽고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드문드문 오래된 시멘트 가드레일이 눈에 띄고, 완만하던 길도 경사가 생긴다. 이좁은 길을 따라 버스가 오갔다니, 그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샛길이 있긴 하지만 갈림길이라고 할 만한 곳은 따로 없어 그냥 주욱 걷기만 하면 된다. 싸리재 농원과 농바우골 입구를 전후해서는 아스팔트 포장이되어 있는 곳도 있는데, 역시 깜깜한 아스팔트는 그다지 낭만이없다. 아름드리나무가 싱그러운 길을 걷기엔 흙길이 제격이다.조금 지칠 무렵 쉼터가 나타났다. 소나무 아래 계곡을 내려다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무 데크와, ‘싸리치옛길’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비석,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다.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고 다시 산길을 오른다. 초록이 무성한 길 위를 계곡물 소리와 새 소리가, 자갈길에 찰박거리는 발걸음 소리 따위가 가득 메운다. 최근 간헐적으로 내린 국지성 폭우 때문에 길에는 빗물 지나간 자국이 깊게 패어 있다. 하지만 폭우 덕분에, 모퉁이를 지나 마주친 폭포는 시원스럽게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따로 이름은 없고, 평소엔 바위를 지나는 실금처럼 보여 우스갯소리처럼 ‘실금폭포’라고 불리곤 하는모양이다. 바위에 물이 철철 흐른다고 ‘철철바위’라고 불리는 것도 같다. 부서지는 물방울에 청량한 햇빛, ‘힐링’이 따로 없다. 곧이어 정상이다. 투박한 바위에 시문이 적혀 있고, 정자 주변으로는 수풀이 무성하다. 발 아래에 새 길, 신림터널을 차들이 지나고 있을 것이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마다 훨씬 가파른데, 오른편으로 펜션과 가옥들이 이어져 있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우체국의 소형차와 마주치기도 했다. 계속 직진을 하며 굽이길을 내려오면 88번 지방도와 마주한다. 버스정류장 표지판은 세워져 있지 않지만 시내버스가 정차한다. ‘석기동’ 정류장이다. 시간만 맞는다면 바로 원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사색에 잠겨 걸어보고 싶은 가을 길 원주굽이길은 왼쪽으로 도로를 따라 더 이어지는데, 걷기엔 아주 좋지 않다. 신림터널의 입구가 코앞인 데다, 명주사 입구인 물안길까지 700m 가량 인도는커녕 차도의 하얀 실선 바깥에바로 배수 도랑이 있는 등 공간이 없어 위험하기 때문이다. 걷고 자 한다면 차량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몇 분 걷다 보면 맞은편에 ‘산촌 곤드레밥’이라는 가게가 보인다. 신림터널을 전후해 근방에 유일한 식당인데, 곤드레밥에 달래간장 등 시골 정취를 담뿍 느낄 수 있다. 표지판을 따라 왼편에 나타나는 물안길로 올라가면 명주사가 나온다. 너른 잔디밭에 개 두 마리가 서로 장난을 치며 절 앞마당을 지키고 있는데, 너와지붕의 아담한 건물은 보통 알고 있는 사찰 풍경과 사뭇 달라 보인다. 오른편엔 모던한 느낌의 고판화 박물관이 있다. 입장료(어른 5,000원/초중고생 4,000원/유아·경로 3,000원)를 내고 들어가면 용비어천가 효종본 등 동양각국의 고판화 4,000여 점을 관람하고, 직접 판화를 체험해볼 수도 있다. 10월부터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해 무료전시도 열릴 예정이다. 7km 가량의 싸리치옛길 여행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명주사 입구 길목 ‘물안동’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탄다. 24번, 25번 시내버스가 도합 하루 여섯 번 지나는데, 두 시간에 한대 꼴이므로 시간을 잘 확인해야 한다. 싸리치라는 이름은 산굽이 골짜기마다 싸리나무가 지천이어 붙었다고 한다. 흔하디 흔한 식물이지만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는 싸리는, 어쩐지 잊히지 않고 이어져가는 옛길이나 우리네 걸음과도 닮아 있는 것 같다. 싸리나무의 꽃은 짙은 분홍빛으로, 여름이 저물 무렵부터가을까지 만개한다고 한다. 어느덧 조그만 보라색 꽃이 한들거리는 싸리치옛길을, 그 꽃말처럼 ‘사색’에 잠겨 걸어보고 싶은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글.사진. 이새보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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