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


암막 커튼 사이로 흐르는 영화가 보고싶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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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만큼 영화를 쉽게 볼 수 있는 때가 없다. 굳이 내가 살고 있는 원주 곳곳의 멀티플렉스에 찾아가지 않아도, 보고 싶다면 심지어 방구석에서도 영화를 편안하게 볼 수 있다. 불법 다운을 받든, IPTV에서 천이백 원을 결제하고 보든 모든 게 너무 편하다. 그래서 요즘엔 예전만큼 영화라는 매체가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IPTV로 명작이라는 세븐의 앞부분을 틀어 보다가 살짝 지루해져 끄고, 이어서 무한도전 재방송을 보고, 그러다 갑자기 Let it go를 듣고 싶어져 겨울왕국을 틀어 본다. 영화 보기가 이렇듯 TV 채널 돌리는 것처럼 쉬워서 그만큼 영화에 열중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일주일에 한 번 엄마 손을 잡고 비디오 가게에 가서 이번엔 무슨 영화를 볼까 한참을 애니메이션 영화 코너에서 서성거리던 나였다. 그 당시의 나에겐 영화관이란 것이 생소했다. 가끔 부모님 손 잡고 원주 시내(원도심)의 단관극장인 시공관, 아카데미 극장을 두세 번 방문한 정도였을까. 부모님이 영화관에 자주 데려가지 않아서 아쉬웠었다. 어릴 때부터 나도 무던히 영화를 좋아했나 보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땐 무슨 영화를 보러 가도 재밌게 봤었던 것 같다. 뚱한 표정의 매표소 아주머니에게 표를 끊고, 암막 커튼 사이로 상영관에 들어갔던 것들이 그 당시 나에겐 신기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어렸던 나는 원주시 극장들의 막바지를 아주 조금 맛볼수 있었을 뿐이다. 사실 원주 시내의 단관극장들은 2006년 모두 문을 닫게 되기 전에, 장장 반세기 동안 원주 시민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즐거움을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주었다. 1956년 조금은 늦게 등장한 원주 최초의 극장인 군인극장을 시작으로 원주극장, 시공관, 아카데미극장, 문화극장까지. 원도심의 평원로(과거 C 도로) 거리에 다섯 개의 극장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원주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시내로 향했다. 그당시 원주 시민들에게 얼마 없는 큰 즐길 거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5년 원주 단구동에 메이저 멀티플렉스중 하나인 롯데시네마가 등장하면서 단관극장들은 거짓말처럼 모두 문을 닫게 되었다. 관객들이 롯데시네마로 이동한 것이다. 하긴 오래되어 냄새 나고, 영화도 한 번에 한 가지 밖에 못 틀어주던 단관극장이 달콤한 팝콘 냄새가 가득한 세련된 멀티플렉스를 경쟁으로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언제부턴가 원주에서 영화 보러 갈래?’ 라는 말은 평원로로 가자는 뜻이 아닌 롯데시네마, 또 지금에 와서는 CGV, 메가박스 중에 시간표를 보고 적당히 어디로 갈지 고르라는 뜻이 되었다. 이제 더는 영화를 즐기러 평원로에 가는 사람은 없다.
 

그 후 평원로는 적어도 빈 극장과 빈 관객들만큼은 허전해진 듯하다. 폐쇄한 극장 건물들은 거의 헤집어져 실용성있는 주차장, 모델하우스 등으로 탈바꿈하였고 다행히 유일하게 건물이 남아 있는 아카데미 극장은 2006년에 시간이 정지한 채로 아직 방치되고 있다. 칠이 다 벗겨진 극장 건물에 이젠 간판마저 떼여 여기가 어떤 곳이었는지 이젠 겨우 짐작만 할 따름이다. 한때 사람들의 주요 행선지였던 단관극장들은 이제 없다. 마치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다는 듯 과거의 뒤안길로 사라진 듯했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광고 문구를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광고 문구로서 이 말의 뜻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사람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떻게 읽으면 사람이 미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맞는 말이다. 물론 우리는 미래를 추구하고 발전을 추구한다. 하지만우리의 존재는 새로운 미래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현재에 얽매여 있고, 우리의 의식은 지금까지 쌓아온 무수히 많은 과거의 중첩이다.
 

우리는 우리가 겪은 방식대로 세상을 인식한다.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했던 기억들이 각자에겐 미래만큼이나 소중한 것이다. 원주를 같이 살아온 많은 시민의 기억 속에는 평원로의 단관극장들이 있다. 엄청난 일이다. 원주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추억이자 문화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기억은 원주라는 지역 고유의 기억이 된다. 아카데미 극장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던 기억, 문화극장의 주변 풍경 등 원주가 아니면 절대로 공유할 수 없는 추억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아 먼지가 쌓인 아카데미 극장은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아카데미 극장은 원주만의 이야기를 가진 건물이고, 원주 사람들만의 것이다. 이젠 관심을 가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만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사용해야 한다. ‘사람은 미래다’. 미래를 직접 만들어나갈 수 있는 우리이기 때문에 추억을 과거만으로 지나쳐 보내지 않고 미래로 다시 창조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의 흐름으로 자연스레 끊긴 발걸음이라면 우리 힘으로 평원로에 새로운 행선지를 만들어 가고 싶다.

. 김정승 한라대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