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변신'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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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20170927_114231.png | 조회수 | 9,423 |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일 아침이었다. 삼성역에서 내려 도서전이 열리는 장소로 향하는 길, 문득 인파 속을 가르고 은밀히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서전 티켓, 도서전 티켓.”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장도 아니고, 도서전에 암표상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여겨졌다. 2014년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이후 할인율이 대폭 낮아져 도서전의 인기가 풀썩 꺾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기에 더욱 신기한 일이었다. 도서전을 찾은 20만명의 관람객 6월 14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은 ‘변신’을 주제로 161개 출판사와 23개의 서점이 참여했다. 관람객은 총 20만2,297명. 지난해 도서전 방문객인 10만3,214명의 두 배에 가깝다. 개막일에는 비교적 한산한 편이 었지만, 그래도 로비에서 표 구입이나 사전 등록을 하기 위해서 는 몇 분씩 대기해야 했다. 입장도 퍽 더뎠다. 경찰이 늘어서 가방을 검사하고, 카메라까지점검했다. IS(이슬람국가)의 테러가 도서전에까지 영향을 주었구나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VIP 때문이었다. 학습용 교재 전문 출판사 등에서 적극적으로 나눠주는 홍보 리플릿을 받으며 천천히 부스를 따라 이동하던 중 사람들이 와글와글 몰려 있는 곳이 있었는데, 웅성거리는 소리에서 금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개막식에 참가하고 도서전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방금 손주에게 줄 그림책을 구입했다고 했다. 영부인이 도서전에서 퍽 오랜 시간 머물며 직접 책을 사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아아 사람들아 책 좀 사라 이번 도서전의 주빈국은 터키로, 부스에서는 한국 전쟁에 참전한 터키군 사진전이 개최 중이었다. 다른 날에는 터키 음식 맛보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단다. 한국·터키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했다. 터키 외에도 국제 출판사 부스에는 많은 사람이 활기차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도서를 수입·번역하려는 출판사 관계자들 사이의 미팅이었다. 처음 도서전을 마주하고선 다소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부스 구조가 복잡해 약간 헤매기도 했고, 전시장 초입에서 생각보다 교육용 교재나 종교 서적을 다루는 부스가 많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책을 처방받는 독서클리닉이나 필사 등 몇몇 이벤트의 경우에 사전신청이 필요했던 사실을 미처 몰랐거나, 이미 예약이 마감되어 참여할 수 없기도 했다. 그러나 천천히 둘러볼수록 재밌고 인상적인 부분을 속속 만날 수 있었다. 전시장 곳곳에 마련되어 버튼을 누르면 글귀가 나오는 ‘문학 자판기’나, 전국의 독립서점 20곳이 모인 ‘서점의 시대’ 부스 앞에서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멈추어 있었다. 실제로 도서전에서 관객들의 가장 호평을 받았던 코너이기도 하다. 음악 전문 서점인 ‘라이너노트’, 추리소설 전문 서점인 ‘미스터리유니언’, 시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 등 장르 서점부터 3대가 61년째 운영하고 있다는 속초의 ‘동아서점’, 충청북도 괴산의 ‘숲속작은책방’ 등 지역을 지키는 조그만 서점에서도 책을 추천했다. 사람 없이 운영되는 ‘무인서점’의 부스는 책방 특성에 걸맞게 역시 무인으로, 돈통만 놓인 채 운영되었다. 각 서점의 특색을 담은 소소한 물건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아아 사람들아 책 좀사라’라고 장난스럽게 적힌 머그컵이나, 직접 그리고 구워서 책갈피를 만들도록 체험을 제공하는 출판사도 있었다. 소규모 출판사들의 출간 도서를 소개하는 ‘책의 발견전’ 역시 도서전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각 책방 사장님이 내게 맞는 책을 추천하고, 자칫 눈에 띄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작은 출판사의 좋은 책을 섬세하게 골라주는 것. 그 과정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여러 번 마주쳤다. 경제적 여건만 허락했다면, 책을 수십 권이라도 구매했을지 모른다. 양손 가득 봉지를 든 사람들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만남과 발견이야말로 도서전에서얻을 수 있는 최고로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책을 읽는 사람들과 마주한다는 건 그 밖에도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다. 올해 초 부도가 났던 송인서적의 투박한 부스를 보고선 마음 한 편이 짠해지는 기분이었다.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을 추진하는 원주시에서는 박경리의 「토지」를 비롯해 다양한 지역의 도서를 들고 참가했고, 지난달 제주도에서 한국지역도서전을 개최하며 인연을 쌓은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에서도 부스를 열고 각종 지역출판물을 전시 중이었다. 부스지킴이들을 위해 도넛을 몇 상자 사다 드리고 인사를 나누었다. 몇 년 후 도서전에 직접 부스를 열고 지키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아, 도서전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도서전이 열린 코엑스의 메인광장에 새로 생긴 ‘별마당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별빛이 내리는 것처럼 높게 올려 쌓인 책장에는 빼곡하게 책이 들어차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유롭게 앉거나 서서 책을 골라 읽고 있었다. 문득 속초 ‘동아서점’ 부스 앞에 적혀 있던 글귀가 떠올랐다. ‘책에 대한 당신의 그 애정 어린 마음 덕분에 우리 서점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가장 번화하고 바쁜 시간과 공간한가운데에 이렇게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고, 서로 마주한다는건, 어쩐지 가슴이 뛰는 일인 것이다 글.사진. 이새보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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