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


제주도 푸른바다, 푸른 책들의 축제 – 2017제주한국지역도서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9-27
첨부파일 20170927_120336.png 조회수 9,387


제주도를 1박 2일로 오다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제주도는 최소한 3박4일은 와야 하는 곳이었다. 내 기준에서는 그랬다. 제주는 하룻밤만 자는 곳이 아니었다. 아무리 일과 관련된 출장이라도 그건 용납할 수 없는 만행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겨우 이틀이라니 섭섭함까지 밀려왔다. 제주국제공항에 LJ0309 항공기가 착륙했을 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예정보다도 1시간 가까이 늦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의무적으로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 출장이 아니었다는 정도다. 이른 점심을 노형동의 유명한 자매국수 식당에서 제주 고기국수로 해결하고 행사가 열리는 한라도서관으로 향했다. 하늘은 제주의 바다처럼 푸르렀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미세먼지의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도 들었다. 제법 조용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한라도서관은 평일이라 그런지 고즈넉하기까지 했다.



서울을 제외한 온 나라 출판사와 잡지사 관계자들이 제주도에 모였다. 반갑게 서로를 알아가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지만, 출판계 앞날에 대한 걱정도 크다. 제주도 푸른 바다처럼지역 출판의 앞날도 푸르렀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제주에 모인 모두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단군 이래 호황이었던 적 없이 늘 불황이라고 자조 섞인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출판 산업도 수천억 원대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있다며 너무 부정적인 모습만 부각되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은 책을 사랑하고, 책을 아끼고, 많은책이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 방법론을 찾고자 이 자리에 모였는지도 모르겠다. 노트북과 펜과 종이만 있다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책을 만들 수도 있다. 부산의 한 출판사 대표는 출판을 한다는 것은독립운동을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방방곡곡 숨어 있는 귀한 책들이 모였다.

‘2017 제주한국지역도서전’은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좋은 책이나와도 쉽게 알릴 수 없는 귀한 책들을 모아 독자들에게 직접 찾아가기 위해 마련됐다.
2013년 경기도 수원과 인천, 대전, 전남 광주, 부산 등 다섯 개 지역 잡지사가 모여 ‘지역문화잡지네트워크’라는 첫 이름을 걸었다. 이후 전국 팔도에서 자기 동네 이야기를 뚝심 있게 책이라는 그릇에 담아온 책쟁이들의 연대,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가 태어났다.
‘2017 제주한국지역도서전’은 사실 2015년 일본 돗토리 현에서열린 ‘2015 Book in Tottori’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북인 돗토리는 일본의 가장 작은 지역에서 오랜 시간 시민의 힘으로 진행된 도서전이다. 북인 돗토리에서는 도서전뿐 아니라 지역출판문화공로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이 또한 제주한국지역도서전에서 제1회 한국지역출판대상으로 이어졌다.


코타니 히로시(小谷寬) 북인 돗토리 실행위원장
북인돗토리를 말하다

사단법인 한국출판협회와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가 공동으로 마련한 세미나에서 기조 강연에 나선 코타니 히로시는 북인돗토리의 특징은 보통의 시민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민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는 것이 이 사업을 제창한 나가이 노부카즈(永井伸和)씨의 ‘스스로 생각하는 시민을 키우는 지(知)의 지역 만들기’에 연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코타니 히로시가 실행위원장으로 있는 ‘북인 돗토리·전국각지의 전시회’는 1987년 ‘책의 국체·일본의출판문화전’에서 시작됐다. 국체란 국민체육대회를 말한다. 국체는 전국을 순회하고 개최하는 현(県)이 우승하기 위해 인재를 모으고, 인재를 육성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재를 모으고, 도서관 등 출판문화 환경을 정비하고 싶다고 생각해 ‘책의 국체’라고 이름을 짓게 됐다. ‘책의 국체·일본의 출판문화전’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 생활의 다양성을 더욱 소중하게 하지 않으면 지역은 소멸하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감에서 돗토리 현의 젊은 시민이 함께했다. 여기에는 많은 정보와 출판이 도쿄발인 것의 폐해 시정은물론 지역자치와 민주주의를 단련해야 한다는 뜻도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 생각하는 시민을 육성하는 지(知)의 지역 만들기, 그중에서도 생애에 걸쳐 독서와 민주주의의 보루라고도 할수 있는 도서관, 학교도서관 및 지역출판의 진흥과 그 네트워크의 확대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코타니 히로시는 ‘북인 돗토리’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지역출판사도 우수한 출판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으며 팔리는 출판으로 기울어지고, 심사대상이 되는 전시도 줄어들고 있다”며 “일본의 출판업계는 1996년이 매출 절정기로 매년 감소해 오고 있다. 특히 최근 수년은 종이 매체의 책은 크게 침체하고 있으며 지역의 출판사도 마찬가지”라고 걱정했다.
이 같은 요인에 대해 그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간단하게정보를 얻을 수 있고 전자서적의 콘텐츠 구입으로 종이 서적,잡지는 점점 팔리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지역 출판사의 특징이었던 사회성이 있는 지역의 문제를 다룬 책보다 지역관광 등 상업 베이스를 타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이후 지역의출판사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예측할 수 없고, 30년이란 세월이 지나면서 당시의 청년도 고령자가 돼 세대교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출판은 작고 수수한 사업이다. 젊은사람들의 관심을 어떻게 모을 수 있는지가 과제”라며 “인터넷이나 편의점에 서점의 기능을 빼앗기는 속에 시민이나 서점이 중심이라는 것으로 이후에도 계속 지속해 나갈 수 있을까”라고우려했다.

지역도서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날 세미나에서 발제에 나선 부길만 동원대 명예교수는 도서전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첫째, 일시에 많은 고객과의 집중적인 접촉, 상담, 거래가 가능하다. 둘째, 그와 같은 접촉을 통해 고객들에게 기업을 소개하고, 저작권의 구매나 수출을 촉진할 수 있다. 셋째, 국내외 출판계 동향, 경쟁업체의 내용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넷째, 고객의 요구를 파악, 이를 기업의 전략에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부 교수는 “결국 도서전은 도서 또는 책 속의 주제를 중심으로 출판인과 출판인, 출판인과 독자, 독자와 저자가 마음껏 만날 수 있는 자리”라며 “지역도서전 역시 지역과 도서를 중심으로 문화적 만남을 이루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 출판인은 같은 지역 또는 다른지역의 출판인들과 만나 상호간의 정보교류를 하며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된다. 아울러, 지역의 핵심 콘텐츠 관련 인물들 곧, 콘텐츠를 창조하거나 전파하는 사람,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사람들과 깊은 교감을 하게 된다”며 “도서와 지역콘텐츠를 매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만남과 교류는 건설적이고 체계적이며 지속적이 될 것이다. 이것은 물론 문화 축제의 광장이기도 하다”고 의미를 뒀다. 부 교수는 이어 “현재 지역 출판이 널리 주목받지 못하고있지만, 지역도서전을 계기로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며 “지역도서전은 지역 출판이 공간적으로 중심부에 위치하지 않았다고 하여 생기는편견들을 깨는 자리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지역도서전을 통해 지역의 독서문화가 진흥될 뿐만 아니라, 수도권에 갇혀 10년 이상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출판산업이 확장하는 모멘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부 교수는 이와 함께 지역도서전이 나아갈 방향을 3가지로 제시하기도 했다. 첫째, 지역도서전은 지역사회 및 지역문화의 핵심과 소통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둘째, 지역도서전은 지역의핵심 콘텐츠를 바탕으로 세계화의 선두가 되어야 한다. 지역은 세계를 향한 열린 창이며 세계를 불러들이는 문이므로 지역도서전 역시 세계의 다른 도시, 다른 지역 공동체의 문화 핵심과 연계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지역도서전은 시대정신을 담아 표현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시대정신은 거대 담론의 결과물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역사회 현장의 세밀한 목소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문화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제주 선언
도서전 기간 중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 첫 정기총회가 한라도서관 지하 강당에서 열렸다. 처음으로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인 도서전이면서 정기총회였다. 정기총회에서는 그동안의 경과보고와 신규회원 인준안, 이사 선임 건, 2017 서울국제도서전참여, 2018 수원한국지역도서전 추진 등의 안건을 의결했다.
또 지난해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를 창립하면서 작성된 ‘제주선언문’을 채택했다. 제주선언문에는 서울을 제외한 전국의모든 출판물을 망라해 2017년 제주를 시작으로 해마다 ‘한국지역도서전’을 열고 순수 민간의 힘으로 ‘대한민국지역출판대상’을 제정해 시상하는 것과 전국 곳곳에서 발행되는 지역문화잡지들의 문화콘텐츠를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고 유통하는 ‘지역문화콘텐츠 전’을 열어 지역 간 소통과 교류를 꾀하고 한국문화의 다양성을 지킨다는 내용을 담았다.

제주에서 희망을 보다
지역 문화 콘텐츠를 기록하고 책으로 엮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제주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 등 수백곳에서 자신들만의 콘텐츠로 출판 불황이란 강을 건너가며 행복해 한다.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 고민하는 모습에서 책의 아름다운 미래가 보인다. 비록 돈을 벌지는 못해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그 일을 천직으로, 기쁨으로 일할 수 있는 것처럼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아직 도서전 일정은 더 남았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제주국제공항을 다시 찾았다. 올 때와 달리 제주발 김포공항행아시아나 항공기는 연착 없이 제시간에 푸른 제주를 날아올랐다. 책이 비상하듯이 그렇게...
글.사진. 이새보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