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의 안식처 – 갈거리사랑촌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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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15039764648c7b60c990ddb19f98afd295211aa0a1.jpg | 조회수 | 9,128 |
푸른 등성이가 안개를 살포시 머금은 곳에 사랑이 머무는 마을이 있다. 마을 이름은 갈거리.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마을 이름으로 큰 칡이 많았다는 뜻이다. 마을 앞으로 실개천이 그림같이 흐르고 산은 병풍이 되어 마을을 감싸고 있는 곳. 원주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고갯길을 넘어가면 만날 수 있는 흥업면 대안 3리에 자리잡고 있다. 무엇이든 부족한 사람들이 찾는 곳. 장애인과 비장애인, 부랑아는 물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갈거리사랑촌’. 1991년 8월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한다’는 설립정신을 갖고 곽병은(63) 전 갈거리사랑촌 원장이 사재 5,300여만 원을 들여 설립한 곳이다. 부족한 사람들끼리 서로 능력을 나누고 노동을 통해 삶의 의미와 자활의지를 찾는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의 작은 공동체다. 처음에는 갈거리사랑촌으로 시작했던 것이 지금은 무료급식소인 ‘십시일반’과 ‘노숙인 쉼터’, ‘봉산동 할머니 집’ 등으로 시설도 확장됐다. 갈거리사랑촌을 설립한 곽 전 원장은 1996년 투명한 운영 철학 실천을 위해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에 기증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5년 10월 24년간 혼신의 힘을 다한 갈거리사랑촌 원장직에서 물러났다. 사랑·정의·자립의 공동체 노숙인과 장애인, 부랑인 등을 포함한 사회에서 소외받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에게 노동의 의미와 자활의지를 심어주고 남녀노소 함께 서로 도우며 가정생활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안식처다. 사랑과 정의·자립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와 자활의지를 찾을 수 있는 공동체, 지역사회와의 교류 강화 및 시설의 사회화 지향, 거주인의 사회적응능력 향상을 위한 다양한 여가·문화 활동의 기회제공, 거주인의 자립지원 및 삶의 질 향상 등이 운영 목표다. 게이트볼과 산책, 요가교실, 건강마사지, 이야기 교실, 음악활동, 인지활동, 언어훈련, 도예체험, 건강체조, 난타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재활 서비스를 운영한다. 또 한글교실과 성교육, 건강교육, 소방안전교육, 인권교육 등 교육 재활서비스 프로그램과 시장보기 체험, 대중목욕탕 체험, 연극·영화 관람, 전시회·음악회·스포츠 관람 등 사회적응 프로그램 및 문화체험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공소예절을 비롯 공소미사, 성지순례, 부활절, 성탄절, 묵주기도 등의 종교활동 프로그램과 생신잔치, 지역행사 참여, 봉사자 만남의 날, 계절 나들이, 대안리 노인잔치, 어버이날 행사, 명절행사 등 특별한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개인위생 지도는 물론 신변자립 지도, 식사지도, 이·미용, 목욕, 인성지도 등 생활재활 서비스와 의료재활 서비스, 가족지원서비스, 직업재활 서비스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한 숟갈씩 덜어 모아 한 그릇을 만드는 십시일반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가 닥친 지난 1997년, 원주시 중앙동에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소 ‘십시일반’이 개소했다. 곽병은 원장은 밥 먹기 어려운 분들에게 원주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나누어주고 싶었다. 병원 가까이 화원을 했던 창고가 비어 있어 계약을 했다. 곽 원장의 마음을 헤아린 건물 주인은 2015년 십시일반이 학성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18년 전에 받았던 저가의 임대료를 한 푼도 올리지 않고 똑같이 받았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란 이름은 곽 원장의 아내 임동란씨의 의견이었다. “여럿이 한 숟갈씩 덜어 모아 한 그릇을 만든다”는 뜻이 급식소에 딱 맞았다. 십시일반을 열고서는 노숙인들이 이용하도록 알리기 위해 역전, 쌍다리, 태학교 등 다리 밑을 많이 찾아다녔다. 노숙인들과 가까워지기는 쉽지 않았다. 라면을 드리고 휴대용 작은 버너도 나누어줬다. 그리고 몇 명에게는 월세방을 얻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술 먹고 노숙하는 습관이 있어 갑갑해 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술 먹고 주인과 싸워 오래 있지 못하고 쫓겨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노숙인이 쫓겨나면 또 다른 집을 얻어주고 쌀과 연탄을 갖다 주면서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도왔다. 그분들은 지금 임대주택에서 술을 줄이거나 끊고 개선된 생활을 하고 있다. 인간 존엄성과 자립을 위한 노숙인쉼터 곽 원장이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겠다는 정신만 가지고 대안리 작은 마을 갈거리에 미인가 복합공동체를 시작한 것이 어느덧 26년. 갈거리사랑촌에는 십시일반을 통해 집 없이 다니는 부랑인들이 식사하러 많이 왔다. 1998년, 이들을 겨울에 얼어 죽지 않게 하자고 컨테이너를 역전 견인 차량 주차장에 놓은 것이 원주 노숙인쉼터의 시작이다. 초창기 쉼터의 아침저녁 식사는 모두 라면이었다. 설립 초기부터 쉼터 이용자들에게 개인이나 기관 이름으로 은행 통장을 만들어 주어 저축을 시키고 목돈을 만들어 주는 등 통장관리를 해주었다. 목돈이 마련되면 월세를 얻어 자립하도록 도왔다. 2004년 9월 이러한 통장관리사업의 대상을 노숙인쉼터 이용자에서 무료급식소 이용자 및 지역 빈곤층으로 확대했다. 이 사업을 체계화시키기 위해 2004년 갈거리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노숙인 및 빈곤층의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에서 시행하고 있는 단주프로그램이나 인문학강좌에도 참석한다. 어떤 이는 십시일반에 나와 봉사도 한다. 지금도 십시일반이나 병원을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곽 원장과 깊고 오래도록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이제 서로 돕는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오순도순 살고 있다. 5만 원의 행복, 봉산동할머니 집 부부의원을 했던 곽병은·임동란 부부는 노인통증전문의였다. 병원에 온 노인들은 보통 사람이 걸으면 20분이면 충분할 거리를 아픈 무릎을 끌고 1시간이 넘게 걸어왔다. 버스나 택시를 타고 오지 왜 걸어오셨는지 이유를 여쭤보면, 한 달에 정부에서 생활보조금으로 15만 원 정도를 받는데 방세 10만 원 내고 나면 5만 원으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차비를 아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병원에 오는 환자 중에 이처럼 딱한 처지에 있는 할머니들이 적지 않았다. 곽 원장은 그동안 갈거리사랑촌을 운영하면서 아끼고 모아두었던 돈으로 봉산동 우물시장에 집 한 채를 4,000만 원에 사들였다. 대지가 132㎡(40여 평)이고 방이 네 개인 옛집이었다. 봉산동 우물시장에 어려운 분들이 많이 살았고 집값이 저렴해 그곳으로 정했다. ‘밥상공동체 집수리 반’에 부탁하여 실비로 방을 하나 더 들이고 목욕실을 지었다. 마당에는 비 가림 챙을 크게 만들었다. 또한, 방마다 싱크대를 놓아서 단독으로 살 수 있도록 집을 개조했다. 공사비는 당시 곽 원장이 ‘대구가톨릭봉사대상’ 부상으로 받은 상금이었다. 독거영세어르신이 임대 대상이고 방세는 난방비와 공과금 일체를 포함해서 작은 방은 4만 원, 중간 방은 5만 원, 큰 방은 6만 원으로 세를 놓았다. 금세 방이 다 나갔다. 지금도 입주를 기다리는 할머니들이 있을 정도로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에게 인기 있는 시설이다. 할머니들은 생활보조금에서 월세 빼고 5만 원 정도로 생활하다가 이곳에 와서 10만 원으로 생활하니 여유가 생겼다고 좋아한다. 곽 원장은 이를 ‘5만 원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몇 년 전에는 원주천주교사회복지회 신부님과 동장님을 모시고 이곳 대문에 ‘갈거리’라는 문패를 달았다. 이 문패는 곽 원장에게 “작은 씨앗 하나가 많은 열매를 맺고,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글. 김예은. 원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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