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


사람들은 언제부터 축제를 즐겨왔을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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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언제부터 축제를 즐겨왔을까



정확한 건 알 수 없어도 아주 오래 전부터임은 분명하다. ‘빌 축(祝)’자와 ‘제사 제(祭)’자를 사용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 고대사회에서는 놀이와 종교행사가 크게 구분되지 않았다. 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축제에는 공동체의 번영과 안정을 기원하는 일종의 제례가 포함됐다. 의식이 끝나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눠먹고 놀이를 했다. 
 가까운 예로 조선시대 매년 봄가을로 치악산에서 지내던 ‘동악제’가 있다. 동악제의 시작은 조선의 2대 임금인 정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종의 둘째 딸이었던 희희공주는 폐결핵을 앓았는데, 병세가 좋지 않아 어의도 손쓸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대신으로부터 치악산에서 수양과 기도를 하면 병을 고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산신이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신 모양인지 기도 끝에 완쾌한 희희공주는 부왕에게 보은의 의미에서 자신이 머물렀던 절을 다시금 잘 지어 달라 부탁했다. 이후 국형사 경내에 동악신단(東岳神壇)을 쌓아 강원관찰사를 비롯해 원주와 인접한 평창, 정선, 영월, 횡성을 비롯한 7개 지역 수령들이 모여 국가와 고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 바로 동악제다. 이후 조선왕조 500년 동안 이어지던 동악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맥이 끊기게 된다. 
원주 토박이 시민들은 원주천변과 강원감영에서 열리던 ‘치악제’를 기억할 것이다. 치악제는 동악제를 계승해 해마다 9~10월 무렵에 열렸던 축제다. 1971년부터 ‘군도제’로 시작해, 1983년부터는 ‘치악문화제’로 개최되다가 2005년 강원감영지가 사적 제439호로 지정되자 그 명칭이 ‘강원감영제’로 다시 바뀌었다. 당시 조선시대 감영 수문병 교대의식 재현, 취타대 행진, 민속경기, 공연, 체험행사 등으로 프로그램이 꾸려졌다. 축제가 열릴 때면 원주천변은 그야말로 잔치집이 됐다. 먹거리는 물론 시끌벅적한 볼거리로 장사진을 이루곤 했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여러 번 이름을 바꿔가​며 원주시민과 함께했던 ‘치악제’는 아쉽게도 2014년을 끝으로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치악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도 ‘동악제’는 여전히 예전처럼 춘계와 추계로 나뉘어 원주시 행구동 소재 국형사 동악단에서 봉행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기원하는 바는 같다. 원주시장을 비롯해 행정수장들이 모여 치악산신에게 국태민안(國泰民安,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함)을 빈다. 
여느 때보다 태평함과 편안함이 간절한 시기다. 올해 동악제는 어떤 모습일지 몰라도 치악산의 영험한 기운으로 부디 시민들의 삶이 평안을 되찾길 바란다.   

 글 황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