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


치악산 막걸리 원주를 평정하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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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의 지역 술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치악산 막걸 리’일 것이다. 치악산 막걸리는 달착지근하면서도 깔끔하고 청량한 맛으로 원주는 물론이고 막걸리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 ‘전국 막걸리 지 도’ 등 주당들의 순례 목록에도 빠지지 않고 꼽히곤 한다. 치악산 막걸리는 개운동에 있는 양조장에서 만들어진다. 시민들에게는 치악산 막걸리라는 이름으 로 유명하지만, 양조장의 정식 명칭은 ‘원주탁주합 동제조장’이다. 원주탁주합동제조장은 6개의 양조 장이 모인 곳으로, 1970년대 국가 차원에서 소규모 양조장을 병합토록 하면서 만들어졌다. 창립일은 1970년 6월 5일이나 각각 양조장의 역사를 꼽아보 면 백 년이 넘는 곳도 있을 정도로 오랜 전통을 가졌다. 지금은 술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나 처음에는 상 표도 없고 디자인이랄 것도 없었다. “초창기엔 막걸 리를 덜 쉬게 한다며 병을 납작하게 우그려 담곤 했 죠.” 원주탁주합동제조장의 김남호 전무는 치악산 막걸리의 역사를 묻는 말에 웃으며 답한다. “당시 포천의 ‘이동 막걸리’, ‘일동 막걸리’가 선두업자였 어요. 그걸 보고 지역 이름을 붙여 ‘원주 막걸리’라 고 하다가 원주의 특색을 담은 ‘치악산 막걸리’라고 바꿨는데, 그게 인지도를 얻고 그대로 굳어진 겁 니다.” 원주탁주합동제조장의 생산량은 계절이나 요일에 따라 변화가 크다. 일평균 생산량은 5,000~10,000 병 정도. 전국구 업체인 국순당을 제외하면 강원도 에서 가장 크다. 강원도 자체에 워낙 인구가 없는데다 춘천 등 다른 도시의 경우 지역 술이 경기도 술 에 밀려 힘을 못 쓰는 상황이고, 오가피 술이나 약 주 등 전통술을 만드는 공장이 있지만 대체로 규모 가 작다. 원주탁주합동제조장이 그나마 지역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사랑받는 술을 만드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물’이다. “6개 양조장 각각의 노하우가 있긴 하지 만 편차는 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술맛은 물맛에 따라 좌우되거든요.” 지역마다 막걸리의 맛에 차이 가 나는 것도 물이 다르기 때문이다. 제주도처럼 현 무암에서 나는 물도 좋고, 포천의 경우 화강암 지대 로 물맛이 좋다. 원주 역시 화강암 암반으로, 술을 만들기에 좋은 물이 난다. 동쪽으로 더 가면 석회암 지대라 물이 부옇고 술을 만들어도 맛이 없다. 특히 원주탁주합동제조장이 있는 개운동 터는 예전에 약수가 나던 자리였다. “선비들이 한양에 갈 때 묵고 가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겨울에도 눈이 녹아 빨 래를 했다고 하고요. 그런 역사가 있을 만큼 물이 풍부하고 질이 좋아, 맛만큼은 자부할 수 있습니다.” 원주탁주합동제조장에서 생산하는 술은 막걸리와 동동주 두 종류다. 

구기자주, 더덕주 등 좋은 성분 을 첨가한 기능성 술이 시중에 많이 나오고 있지만 원주탁주합동제조장에서는 순수하게 쌀과 엿(옥 수수), 밀가루만 사용한 술, 그 중에서도 텁텁하며 걸쭉하고 목 넘김이 칼칼한 탁주다. 예로부터 서민 들이 마셨던 우리네 술, 막걸리에 대한 김 전무의 예 찬은 끝이 없다. “막걸리는 곡식을 삭혀 만드니 몸 에 좋습니다. 땀을 낸 후 먹으면 갈증해소도 되고, 포만감이 있으니 지나치게 마시지 않습니다. 피부 에도 좋아요. 시멘트 바르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막 걸리로 손을 씻거든요. 누룩곰팡이가 머리칼을 검 게 만든다고 해서 독일에서 관련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 막걸리에는 유산균이 많아 장 건 강에도 좋은데, 요구르트 100병과 맞먹는다고 해 요.” 김 전무는 사진도 한 장 내보였다. “여기 보이 는 동그란 게 효모고, 실처럼 보이는 게 유산균입니 다.” 한 블로거가 현미경으로 치악산 막걸리를 관찰 한 사진이라고 했다. 막걸리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누룩곰팡이가 몸속의 유익균을 증가시켜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최근에는 일본 도쿄농업대학 연 구팀의 성분 분석 결과 막걸리의 맛과 영양이 일본 전통술인 니혼슈(日本酒)나 와인보다 우수함도 증 명되기도 했다. 막걸리에는 효모와 유산균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다 식이섬유가 풍부했으며, 단백질 과 엽산은 니혼슈·와인보다 5~11배 많이 포함되 어 있었다. 순한 맛을 내는 유산(乳酸)은 니혼슈보 다 1.2배 이상, 산미를 내는 구연산은 와인보다 1.2 배 이상 많았다. “아,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나오는 건 맞습니다.” 김 전무가 꼽은 막걸리의 단점이다. 막걸리를 마신 후 숙취로 두통이 있다는 얘기는 어떨까. “일리는 있습 니다. ‘아세트알데히드’라는 성분이 머리를 아프게 하거든요. 막걸리가 탁주다 보니 병에 담아 며칠 지 나면 가라앉아요. 소비자들이 가라앉아 맑은 술보 다 탁한 술을 선호하니까, 소매업체에서도 가라앉 지 않은 술, 덜 익은 술을 선호했죠. 그렇더라도 충 분히 익힌 다음 내야 되는데, 덜 익힌 걸 빨리 내게 되고, 반 밖에 안 익힌 술이니 숙취가 더 심해졌던 거예요.” 10여 년 전에는 이런 일들이 있었지만, 요즘은 품질이나 유통 측면에서 많은 개선을 이뤄 나 아진 상황이라고 한다. ‘상한 막걸리를 마셔 배탈이 났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막걸리를 숙성시키면 효모가 모두 죽고 식초가 됩니다. 인체에 해가 없는 자연식초죠.” 김 전무는 처음부터 술 계통에서 일해야겠다는 사 명감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가볍게 도우며 시작한 일이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되었고, 많이 마시다보니 인이 박였다. “술은 이틀에 한 번씩은 마십니다. 물 론 막걸리죠. 소비자들이 마시는 현장에서 직접 맛 보고 평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맛을 평해야 하니 조금 엄격해져요. 만든 날짜를 확인해 보고 보 관 상태가 어떻구나, 요즘은 당도가 조금 높구나, 하 는 식으로 분석을 합니다.” 막걸리가 가장 맛있는 때는 만들고 나서 사흘째란다. 막걸리와 최고의 궁 합인 안주로는 김치와 두부를 꼽는다. 한창 불었던 막걸리 붐이 잦아든 지도 한참, 지역 양 조장으로서 고민도 점점 깊어진다. 특히 인구가 늘 고 복선전철화 등 교통 인프라가 좋아지며 걱정이 많다. 춘천의 경우 전철이 뚫린 이후 수도권 술이 더 욱 득세하게 됐다. 여행자들이 ‘춘천 닭갈비’는 먹지 만 ‘춘천 술’은 잘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주도 그 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어요. 원주에 오는 사람들이 원주의 특색 있는 술을 마신다면 좋겠습 니다.” 원주탁주합동제조장의 목표 역시 이와 잇닿 아 있다. “지역에서 확실한 인정을 받고, 수도권에 진출하고 싶습니다.” 치악산 막걸리의 십 년 후, 이십 년 후를 기대해본다. 

 


글 이새보미야 사진 원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