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


막걸리 없인 못살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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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없인 못살아

막걸리. 이름만 들 어도 참 편하다. 우 리 민족의 술이다. 가난한 민초들의 술이다. 농사일 하며 힘들 때 한 대접 마시면 정말 힘이 나는 듯 하다. 곡물로 만든 술이니 힘이 날 수도 있을 것이 다. 또 하나는 그도 술이니 마비 즉 취기일 것이다. 취기가 거나하게 돌면 일에 힘드는 줄 모르니 힘이 난다고 생각될 것이다. 어쨌든 민초들은 그 술을 생 활의 한 부분으로 삼으며 살아왔다. 옛날에는 집집 마다 막걸리를 만들어 썼다. 가양주였다. 그러니 술 맛도 집집마다 달랐다. 마치 김치찌개나 두부찌개 가 집집마다 다르듯이 손맛에 따라 달랐다. 그래서 이집 저집 막걸리 맛을 보는 재미도 좋았다. 우리의 삶과 문화가 녹아 있는 그 막걸리의 수난은 나라를 빼앗기면서 존립을 위협 받게 됐다. 일본놈들의 강점하던때다.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 지를 만들 때 가장 먼저 하는 짓이 문화를 없애는 일이다. 

문화는 정신이기 때문에 그 나라의 문화를 없애야 지네 맘대로 할 수 있으니까 그런 정책을 쓴다. 우리땅에서도 마찬가지로 문화를 없애는 일의 하 나로 민초들의 술, 민중들의 술 막걸리를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집집마다 집에서 만들어 먹던 막걸 리를 금지시킨 것이다. 그래서 막걸리는 한반도에 서 거의 사라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정신 가운데 한 부분을 없앤 것이다. 수천년의 술 문화를 없내는 야만의 짓을 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집에서 만들 던 모든 술을 대대적으로 단속한 것이다. 긴긴 역사와 풍성한 문화를 담은 막걸리는 그렇게 사라졌던 것이다. 집집마다 내려 오던 노하우도 흔적조차 없 어졌다. 그리고 양조장에서 만든 술만 쓰게 했다. 일본식과 짬뽕이된 기형적인 막걸리가 탄생한 것 이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막걸리가 나오면서 숙성 을 촉진시키기 위해 카바이트라는 첨가물까지 사 용했다. 지금은 금지됐지만 이 첨가물은 술먹고 난 후에 머리가 아프게하는 주범이었다. 아직도 일부 사람들이 막걸리 먹으면 머리 아프다는 고정관념 은 이렇게 유래된 것이다. 또 하나 어렸을적 아픈 기억이 있다. 집에서 막걸리를 담그지 못하게 하다 보니 수시로 단속을 했다. 단속반이 떴다하면 막걸 리 단지를 감추느라 비상이었다. 눈앞에서 선하다. 어머니가 단속반이 들이 닥쳤을 때 들킬까봐 조마 조마해 하던 모습말이다. 

우리의 막걸리는 어찌 보면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보는듯하다. 온갖 수난을 함께 살아왔다. 최근에 막걸리 열풍이 꽤 불더니 주춤하는 듯하다. 그런데 막걸리의 매력은 특별한데 있다. 그중에 무엇보다도 첫째는 안주를 특별히 가리지 않아 좋다. 부담 없는 좋은 사람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저녁때 음주로 인해 오는 뱃살 걱정을 안해도 좋다. 빨리 배가 부르니 안주에 탐욕이 당연히 줄어드니 안주 로 인한 뱃살 방지에 으뜸이다. 셋째 배가 좀 부르 면 한차례 더 술집을 거치지 않게돼 술을 많이 마시 지 않으니 더욱 좋다. 넷째 다음날 아침에 소주같은 독주를 마셨을때 느끼는 그런 부담이 없어서 좋다. 다섯째는 술 값이 적게 들어 좋다. 이 보다 더 좋은 술이 어디 있는가. 막걸리처럼만 살 았으면 좋겠다. 그리 살아 보자. 



글 김대중 원주인문도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