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


〈원주에 사는 즐거움〉의 시작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10-26
첨부파일 원주에_사는_즐거움.jpg 조회수 2,016

“나 때는 말이야~”

<한·일 지역생협 교류 일지>
2001년 11월 : 원주지역 생협활동가들, 고베·오사카 지역의 생협 방문
2002년 5월 : 무위당 선생 8주기 추모행사를 기념하여 오사카 S생협 야마구치 이사장 일행 원주 방문
2003년 2월 : 원주지역 각 생협 활동가들, 오사카 S생협과 오사카 의료생협 방문
2003년 7월 : 오사카 S생협 조합원들, 원주 의료생협 방문
2003년 8월 : 한·일 의대생 교류 차원에서 일본 의대생들 원주 방문
2003년 11월 : 오사카 S생협 조합원 및 생산자들 원주 방문
2004년 2월 : 원주지역 생협 조합원들, 오사카 S생협·롯코 의료생협·고베 의료생협 방문

18명의 원주지역 협동조합 아줌마들, 
지난 2월 24일~28일 일본 고베·오사카 생협을 방문하다

한·일 지역생협 교류 4년 작지만 아름다운 만남
  글 최혁진 원주 의료생협 기획실장 

 


[제6호 2004.03 p.2~3]

원주지역 생협들과 일본의 고베, 오사카지역 생협들 간의 교류 역사는 2001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원주에서는 원주 의료생협 설립이 준비되고 있었고, 그때까지 서로 별다른 소통이 없었던 원주 한 살림과 원주생협은 새로운 관계 모색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때, <무위당 선생을 기리는 ​모임>이 여러 단체들이 함께 일본의 생협운동을 견학해 보자는 제안을 내놓았고, 차제에 원주의 생협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일본 생협 방문이 성사되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한·일 지역생협 교류가 올해로 4년.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생협은 유기농산물을 파는 곳 정도의 협소한 의미로 이해되고 있고,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부족한 상황이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지만 그렇게 시작된 고베, 오사카 지역의 생협 견학은 많은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었다. 

원주의 생협운동에 새로운 활력
한편, 일본의 생협들은 어느 정도 내부 역량이 축적되면서 시민 중심의 다양한 국제적 교류와 연대 네트워크 구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오사카 S생협의 경우, 한국 이외에도 필리핀의 가난한 농민들과 교류하고 있는데 특히 필리핀의 소농들을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서 보호하고자 이들이 생산하는 바나나를 전량 구매하고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어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현재 이러한 민중교역은 남미 커피생산 농가와 한국 음성지역 고추생산 농가와의 직거래 활동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물류 교류가 보다 값싼 농산물을 수입하는 차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S생협은 철저히 지역의 생산자들을 보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는 물건이나 신뢰에 기초하여 연대하는 다른 나라 단체의 물건들을 지속적인 관계유지를 위하여 수입하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의 의료생협들도 적극 참여하고 있는데, 한국, 네팔, 대만 등과의 상호방문, 의료지원활동, 의대생 교류 등 다양한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두터운 신뢰 쌓여
원주와 고베, 오사카 지역 생협간의 교류는 해를 거듭할수록 두터운 신뢰가 쌓이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올해의 방문단이 온전히 주부들로 이루어진 데에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앞으로 우리가 열어가야 할 세상은 서로 보듬고 보살피는 생명과 평화의 세계가 되어야 하고 그 주인공은 여성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물품배송에서 반찬·도시락 가게까지
오사카 S생협의 다양한 ‘워커즈’ 시스템
 글 이남숙 원주생협 이사  

일본 생협의 조합원들에게는 우리와 ‘다름’이 있었다. 우선, 생협의 역사가 30~40년 정도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 조합원 활동 역시 그 세월을 함께 하고 있었다.

다양한 방식의 ‘워커즈(workers) 시스템’
오사카에 있는 S-COOP(S생협은, Security<안전>, Senboku<센보쿠지역>, Sustainable<지속 가능한>이라는 세 가지 의미의 S를 말함)에서의 3일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S생협의 가장 기본적인 소비자 단위는 ‘반’인데, 초기에는 4~5명이 한 반을 이루어 구매를 시작하다가 점차 15명~20명의 대규모로 반이 편성되었다. 그 안에서 한 사람이 당번을 맡아 구매한 물품을 배송한다. 소비자 조합원들은 생협에 관한 홍보 전단지와 지역 소식지를 만들어 돌리고 이를 통해 지역소식을 공유하고 활동의 내용을 결정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동시에 생협이나 환경에 관한 학습을 하거나 산지를 견학하고 요리강습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변화와 더불어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늘어나고 반 조직에 스스로 참여하는 여성들이 줄어드는 현실 앞에서 여성들에게 자원봉사만을 요구할 수 없었고, 점차 늘어나는 개인 배송 요구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그​래서 25명 정도의 큰 반을 만들고 5명을 당번으로 정해 돌아가며 일을 하고, 매상고의 2%를 보수로 지급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것이 S생협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워커즈(workers)’ 시스템의 단초가 되었다. 초기에 당번들은 물건을 받으면 자전거나 경자동차로 배송해 주다가 850kg트럭으로, 1톤 트럭으로 배송했다. 이로써 자신들이 단지 좋은 먹거리를 시켜 먹기만 하는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님을, 남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왔던 배송활동을 여성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당당하게 노동의 대가를 지불받는 사회적 경험을 공유하게 됐다. 이러한 ‘배송 워커즈’방식이 가능했던 것은 조합원들 스스로가 필요와 욕구의 지점을 활동으로 연결시켰고, S생협이 직원을 고용하기보다는 조합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조직을 열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S생협에서는 소식지 편집과 발송, 반찬가게, 도시락 가게 등 여러 가지 워커즈 방식의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S생협은 지역 안에서 생협간 경쟁, 커지는 규모로 인한 조합원들의 의견수렵과 조정의 어려움 등 다양한 과제에 직면해 있지만 “조합원이 주인이고 생협을 이끄는 사람도 조합원”이라는 확신 속에서 그들이 가진 힘의 원천이 느껴졌다.

모두의 꿈이 이루어지는 곳, 생협!
일본 생협의 조합원들에게는 우리와 ‘같음’도 있었다. S생협 조합원들과 함께 했던 3일 저녁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는데, 그것은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었다. 그녀들의 최선을 다한 보살핌과 대접은 우리를 감사하고 미안하게 했다. “특별한 자격이나 조건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작은 꿈을 이야기하면, 그 안에서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게 되는 곳이 생협”이라고 말하던 야먀구치 이사장의 “설명하려 하지 말고 느끼세요”라는 주문처럼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정성과 애정을 보여주려 했던 일본 생협 사람들과 어울림과 즐거움으로 그것을 마음껏 받들이려 노력했던 우리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자료제공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