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


“모든 여정이 즐거울 순 없잖아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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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정이 즐거울 순 없잖아요.” 

- 일러스트레이터 Solma의 전시 -

 

삶이 유독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어디로, 얼마나 가야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 지만 그럼에도 여정은 계속된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각자의 몫을 짊어지고 저마다 정해진 방향을 향해 걸을 수밖에 없다. 중앙동의 한 전시장에서 일러스트레이터 솔마(Solma/본명:한솔미)를 만났다. 솔마는 원주를 기반 으로, 꾸준한 창작활동을 통해 입지를 다져온 젊은 작가다. 지난 11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전시 는 솔마와 팀 어스 앤 클라우드 (earth & cloud)의 공동작업 결과물이다. 이번 전시는 하나의 주제를 일러스트와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작가와의 대화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구현하며 ‘외로움’이라는 보편적 감정에 대한 관객의 공감을 끌어냈다. 

Q. 전체적인 스토리텔링을 보면 고립되어있던 주인공이 또 다른 자아로 보이는 누군가를 만나서 해방되는 느낌이거든요. 전시의 기획의도가 궁금해요. 
제가 2013년부터 시작한 작업이에요. 당시에 실은 많이 외롭고 우울했어요. 아무래도 그 때 감정 이 많이 반영이 된 거 같아요. 거창한 작업을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고 낙서로 시작했어요. ‘이렇 게 낙서가 많이 모였는데 한 번 이야기로 만들어보자’ 해서 기획하게 된 거죠. 사실 작품 자체는 저 를 위해서 만든 셈이에요. 

Q. 면으로 작품을 접하게 되실 독자 분들을 위해 줄거리를 소개해주신다면? 
항상 외로웠던 한 소녀가 있어요. 소녀가 외로움을 이겨내고 다른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서 자기 의 세계를 넓혀가는 이야기를 여행에 비유를 했어요. ‘삶은 여행’이라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작업 내내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으로 진행했어요. 

Q. 소녀 둘이 만나 숲에서 알록달록한 꽃을 만나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어떤 뜻인가요? 
살다가 만나는 희망일 수도 있고 선물일 수도 있고요. 희망의 상징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서로 꺾어들고 가슴에 품어서 풍선처럼 날아가잖아요. 해방의 의미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숲이 무채 색인데 벗어나면서 밝은 공간으로 나아가잖아요.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정적이면서도 수평적​인 공간에서 수직으로 움직임이 변화해요. 전체적으로 ‘변화’를 시각적으로 나타내고 싶었어요. 



Q. 그림,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로 전시 내용이 구성됐는데 팀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어스 앤 클라우드’라고 드러머 양태석, 저, 한단비, 쏜콴으로 구성된 팀인데요. 이전에 양태석 님, 한단비 님과 라는 전시를 했었거든요. 이번에도 다시 한 번 팀 작업으로 뭉친 거죠. 추후에 쏜콴이라는 친구도 합류를 하게 됐고요. 

Q. 다큐멘터리를 보면 고성 산불 현장에도 가셨더라고요. 
올 1월 달에 전시 콘텐츠가 이미 있었어요. 기왕이면 전시를 풍성하게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애 니메이션과 다큐 영상을 만들었어요. 4월 말 경에 고성에 산불이 났었는데, 현장이 제 그림과 정 서적으로 닮았다고 느꼈어요.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가 숲을 걷는 장면이 있거든요. 원래는 소리​채집을 하러 간 건데, 산불의 현장을 연결 할 수 있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불미스러운 사건이지만 그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위로를 타인에게 전달해주려는데 전시 목적이 있었나요? 
위로의 목적보다는 이 작품의 내용이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보편적이라는 생 각이 들었고.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인생의 사이클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저 뿐만 아니라 다 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위로보다는 공유의 차원이에요. 공감을 받고 싶 었던 것 같아요. 아마. 

Q. 2020년은 솔마 작가님께 어떤 해였나요? 
다른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올해 코로나 때문에 일상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어요. 그럼에 도 불구하고 되게 많은 일을 했어요. 옥상영화제 기획단으로도 일을 했었고요. 애니메이션을 영화제에 출품 했는데 떨어졌어요. 그런데 운이 좋게도 한 영화사에서 연락이 와서 배급도 하게 됐어 요. 저 개인적으로는 그림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어요. 코로나19로 물론 힘들었지만 재밌는 일 도 많이 했고 새로운 일도 많이 해서 뜻 깊은 한 해였던 것 같아요. 

Q. 솔미님의 인생 여정에 있어서 지금은 어떤 시기인 것 같으세요? 
글쎄요? 애니메이션으로 치자면 누구를 이제 막 만난 순간 같아요. 두 소녀가 집 안과 집 밖에서 서로 만나잖아요. 아직 별 변화는 없지만 뭔가가 일어나려는 순간이지 않을까요. 

Q. 조금 전 질문에서 ‘삶은 여행이다’라는 명제에 대해서 골똘하게 고민하셨다고 하셨는데 정답을 찾으셨나요? 
네, 여행인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고행도 여정이잖아요. 여행이라는 큰 보따리를 열어보면 여러 가지 것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애니메이션 속의) 소녀들이 꽃의 세계로 가면서 끝나잖아요. 그 런데 ‘꽃의 세계가 마냥 좋은 곳일까?’ 하는 생각은 있어요. 또 다른 데로 가야죠. 결말이 아니라 하나의 여정이에요. 

Q. 다큐멘터리를 보면 작품활동을 통해 ‘나의 가치를 실현하고 싶다’고 인터뷰 하 셨거든요. 솔마 남께서 실현하고 싶은 가치는 뭘까요? 
그냥 누군가한테 ‘그래, 네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살아왔구나’ 하고 인정을 받고 싶어요. 인 정 욕구가 있는 것 같고. 살면서 누군가에게 긍정 받는 그런 기회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 죠. 나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 그런 걸로 내가 사는 이유를 발견하고 싶어요. 

Q. 작업하시고 창작하시기에 원주는 좋은 곳인가요? 
사실 그렇게 좋지는 않아요. 원주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작업을 진행하고 전시도 열었듯이, 도 와주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원주에서 계속 창작할 수 있는 건 맞아요. 감사한 일이죠. 그래도 여 전히 한계가 있어요. 인프라가 없다보니까, 하다못해 전시를 하려고 해도 마땅한 장소가 없는 거 죠. 또 창작하고 소비하는 순환이 되어야하는데 그런 판이 부족한 느낌이에요. 내가 잘 하고 있는건지 확인이 안 되면 의욕이 잘 안생기기도 해요. 



Q. 앞으로의 여정은 어떻게 흘러갈 것 같나요? 
저는 계획을 잘 세우지 않아요. 이유는 딱히 없는데 흘러가는 대로 살아요. 사실 별다른 계획이 없답니다. 그래도 계속 끼적이고 있을 것 같아요. 계속 작업하다가 쉬다가, 작업하다가 쉬다가 반 복하고 있지 않을까요?

 

 글·인터뷰 황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