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


“우리는 그들과 땅을 나눠 쓰고 있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1-06
첨부파일 동물이_다니는_생태_통로_이야기.jpg 조회수 1,050

“우리는 그들과 땅을 나눠 쓰고 있다”

- 동물이 다니는 생태 통로 이야기

‘보이지 않는 존재’란 무엇일까. 영혼이나 종교 같은 영적인 반 응일까? 인간 무리를 통제하는 각종 사회 시스템일까? 어쩌면 몇 달 전에 아파트가 밀집한 무실동에 나타나 재난 문자 알람을 울리게 만든 멧돼지야말로 그런 존재가 아닐까? 멧돼지는 아파 트 단지를 휘젓고 4차선 도로를 가로지른 끝에 결국 아파트 단 지 안에서 엽사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드 러나 일어난 비극이었다. 인간이 사는 땅에 함부로 넘어온 대가 였다. 멧돼지의 죽음은 어쩔 수 없던 걸까? 어쩌면 멧돼지는 아 파트에 살고 있는 인간보다 더 먼저 이 땅에 뿌리를 내렸는지도 모른다. 멧돼지가 갈팡질팡하며 누빈 곳은 원래 산과 논, 들판이 었고 도시화가 된 것은 삼십 년도 되지 않았다. 인간이 차지하는 땅이 커질수록 인간 외에 것들은 대부분 유해하고 성가신 것으 로 몰렸다. 인간 외에 것들은 점점 영역을 좁히고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을 뿐, 그들은 어딘가에 서 인간과 함께 땅을 나눠 쓰며 살고 있다.



쪼개진 서식지를 잇는 생태 통로

반곡동 혁신도시 도로를 달리다보면, 공중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볼 수 있다. 야생 동물이 번식과 월동, 휴식을 목적으로 이동할 수 있게 만든 생태 통로다. 생태 통로는 운전자와 동물에게 모두 해가 되는 로 드킬 예방을 위한 것 말고 동물 생태계를 보존하는 목적도 있다. 인간이 도로를 건설하며 기존에 살던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끊기거나 조각나기 시작했다. 특히 넓은 서식지가 필요한 야생동물일수록 이런 현상에 치명적인데, 생태 통로는 서식지를 잇고 동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생태 통로는 ①육교형(상부통로형)과 ②터널형(하부통로형)이 있다. ①육교형은 포유류가 이동하고 ②터널형은 포유류와 양서류, 파충류 등이 이동한다. 생태 통로와 함께 유도 울타리나 수로 탈출시설, 암거수로 보완 시설, 도로횡단 보완 시설을 만들기도 한다.

게 떼가 다니는 길, 거북이가 기어가는 길
호주 북부에 있는 크리스마스 섬에 특별한 생태 통로가 있다. 매년 우기가 시작하는 10월~11월 사이에 짝짓기와 산란기에 맞춰 땅에서 바다로 이동하는 크리스마스 꽃게들을 위한 다리로, 오직 이들만 건널 수 있게 설계했다. 호주에 또 다른 지역인 멜버른 근처 고속도로 한복판에는 밧줄로 만들어진 생태 통 로가 있다. 처음에는 다람쥐와 주머니쥐 이동을 위해 만들었는데 점차 앵무새와 까치 같은 새들도 다 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한편, 일본 고베에는 다리 형태는 아니지만 철로 아래에 설치한 생태 통로가 있 다. 바닷가와 철로가 가까운 탓에 바다에서 땅으로 나온 거북이가 철로를 따라 이동하다 끼거나 갇히 는 일이 계속 발생했다. 이를 막기 위해 철로 아래에 U자로 이어진 거북이 전용 통로를 설치해 이들의 안전을 보호 하고 기차 정차 사고를 줄였다.

도심 한복판에서 죽은 멧돼지
다시 멧돼지 이야기로 돌아가자. 멧돼지는 유해조수(인명이나 가축,가금, 항공기, 건조물, 농업,임업,수 산업 등에 피해를 주는 조수)로 취급한다. 즉, 피해를 끼쳤다면 사살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생태 통로를 만든 취지와 어긋나기 때문에 이용 제한이 필요한 걸까? 유해조수로 분류 전에 멧돼지도 야생 동물에 속한다. 이들에게도 생태 통로가 필요하다. 결국 생태 통로는 특정 야생동물을 위한 시설이기 보다 인간과 동물이 이 땅 위에서 함께 공존하기 위해 필요한 시설이다. 반곡동 혁신도시에 있는 생태 통로 다리처럼, 야생동물이 숨어 사는 것 같은 지역에 생태 통로를 비롯해 유도 울타리 등이 계속 늘어 나길 바란다. 인간만이 땅을 독차지할 이유는 없다.


사진 출처
'The Sydney Morning Herald' 홈페이지
'The Independent UK' 홈페이지
‘Wondrous World Images’


호주 크리스마스 섬 게 다리


호주 밧줄 다리


고베 거북이 통로


 글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