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


도시·자연·문화가 함께 가는 도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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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23년째 살고 있는 최재석 한라대 건축학과 교수는 2013년 도시 환경적 측면에서 ‘원주가 살기 좋은 동네’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원주 도시 환경 이야기’를 출간했다. 최 교수가 그동안 각종 언론사와 잡지 등에 기고한 글들을 묶은 것이다. 최 교수는 책을 통해 “원주라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 지역의 일부만을 생각하는 지역 이기주의, 문제가 없기만을 바라는 행정 편의주의적 사고,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의 변화에 무감각한 주민, 그리고 환경 전문가 및 도시디자인 전문가 부재 등의 요인으로 역사적, 철학적 개념 없이 형식적이고 획일적으로 만들어지는 원주의 도시환경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고 일침을 놓는다. 또 “자연자원과 더불어 조상들이 키우고 지켜온 역사 문화적 자산을 보존하고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변형하고 가치있게 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에서 과거와 현재와의 소통, 세대간의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며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자연환경이나 도시환경을 무의미하게 발전시키려고 하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일”이라고 경고한다.

다음의 글은 ‘원주 도시 환경 이야기’에 수록된 글이다.



건강한 도시 원주가 매력적
지방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어, 자치단체마다 인구 늘리기가 현안과제가 돼 갖가지 방법을 찾고 있는데 원주는 줄어들지 않고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원주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원주가 살기 좋아서’ 혹은 ‘원주가 매력적인도시라서’ 등의 이유라면 환영할 일이지만 강원도 인구가 줄어드는데 원주만 인구가 늘고 있는 것에 대한 자랑(?)은 뭔가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오래 전 원주의 도시이미지를 ‘건강·의료산업의 중심도시’(2020년 원주도시기본계획안)로 결정한 바 있다. 당시 영동고속도로에 설치된 대형 입간판에는 더 구체적으로 ‘첨단 의료기기 산업도시 원주’라고 표기되어 있다. ‘원주=첨단의료기기도시’로 홍보하기 위한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원주에 첨단의료기기가 뭐가 있지? 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원주의 정체성을 알리고 품격을 높이는데 ‘의료기기’라는 기술적 용어의 사용에는 뭔가 한계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의료도시’ 뒤에 가려진 ‘건강한 원주’라든가 ‘Healthy Wonju’라는 용어만을 사용하는 것이 더 폭 넓고,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며, 원주가 건강한 도시라고 좀더 부각시키고자 한다면, 원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시민의 건강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예를 들면 원주는 자동차보다는 자전거, 자전거보다는 걷기에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더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원주는 전국 어떤 도시보다도 걷기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매년 국제걷기대회가 원주에서 열리고 시민들의 걷기운동이 주민차원에서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한걷기연맹 본부가 원주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해가 될 것이다. 실제로 아침, 저녁이면 어느 곳을 가나 걷기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원주=걷기 도시’라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 어떨까? 원주가 ‘누구나(유아, 어린이, 학생, 어른, 노인) 걷기 좋은 곳’으로 인식된다면 ‘건강한 도시’로 한 발 다가설 수 있고 매력적인 도시로 부각되어 원주로 몰려들지 않겠는가?

인기 있고 사랑받는 거리는 범죄로부터도 안전
현재 원주시 인구가 30만명을 넘어 중소도시로, 다른 도시에 비해 빠른 속도로 인구가 늘다보니 도시 팽창으로 인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런 인구 증가에 비해 시민을 위한 환경 친화적 공간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다. 도심은 자동차의 밀집으로 시민들의 보행 불안에 노출되어 있고, 이면도로에는 보도가 없거나 끊어져 있어 걷기는 물론 자전거의 통행도 어렵다. 그래도 실제 아침에 출근하다 보면, 이런 불편을 무릅쓰고 자전거로 혹은 걸어서 출퇴근하는 주변분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집에서 직장까지 자전거로 혹은 걸어서 갈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걷기 좋은 장소가 많다는 것은 시민의 건강은 물론 도시가 얼마나 환경 친화적 도시인지 알 수 있는 잣대가 되고 있다. 걷기는 그만큼 시민들이 걷는 행위를 통하여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진정으로 알게 되는 계기를 만든다. 레베카 솔릿은 “거리를 걷는 것은 지도와 삶을 연결하고 사적인소우주와 공적인 대우주를 연결하며, 주변의 무수한 미로(迷路)에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미국의 사회학자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인기 있고 사랑받는 거리는 많은 사람이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범죄로부터 안전하다. (…) 도시를 돌아다니는 시간이 적을수록 도시는 더 두렵게 느껴지며 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적을수록 정말로 외롭고 위험한 곳이 된다.”고 역설한 바 있다.

걷기만을 찬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공간의 변화가 시민들의 신체적 리듬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기간에 이뤄지는 도심의 다양한 택지 개발을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런 대단위 도시개발에 회의적인 생각을 많이 했다. 구릉지를 깎고 땅을 구획하여 도로를 만들다 보니 땅이 가지고 있는 도시공간적 리듬이나 시민들의 건강한 삶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몇 십년간 획일적인 개발이 반복되어 왔다. 그렇다보니 길은 끊어지고 자동차 중심의 도로로 바뀌었다. 이젠 되돌릴 수 없지만 개발로 끊어진 길을 연결하고 자동차의 방해나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도록 시민들에 대한 배려가 절실한 시점이다. 예를 들면 원주천을 관설동에서 가현동까지 수변공간을 만들어주고, 이를 치악산에서 원주천을 지나 중앙로의 차 없는 거리를 거쳐 배부른산까지 생태적 녹지축을 이어준다면 시민의 걷기코스는 환영받을 것이다. 또한 중앙로의 차없는 거리를 전체 구간으로 확대한다면 원주의 걷기 환경의 변화에 대한 모델이 될 수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앞으로 폐지될 원주역 부지를 시민을 위한 오픈 스페이스로 거듭나도록 밑그림을 그려야 할 때이다. 원주역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판대역, 동쪽으로는 신림역까지 수십킬로미터의 폐선부지가 생겨날 예정이다. 이런 폐선 예정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따라 원주의 인상은 좋아질 수도 나빠질수도 있다. 철로로 끊어진 원주의 남북을 생태적 도시공간으로 이어주는 선형(線形)의 녹지축은 원주의 자연적 특성을 통합하여 걷기 천국으로 건강한 원주를 만드는 혁신적인 자원이 될것이다.

도시-자연-문화가 어우러지는 도시
도시의 아름다움은 하나의 모뉴멘트로 답하기 보다는 오랫동안지켜온, 그 도시만의 분위기에 많이 좌우된다. 유럽의 도시가 대개 그렇다. 우리의 도시는 근대화의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을 담다보니 도시의 성격이라든가 품격은 찾을 기회를 놓쳐 버렸다.

특히 원주는 6·25전쟁 등의 피해로 짧은 기간에 도시 난개발이 이루어져 왔고 도시공간적 조정 없이 마구잡이식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땅은 개인 소유이지만, 그 땅 위에 지어지는 건축물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다’라는 얘기가 있다. 다시 말하면 도시의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그 가운데 통일성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도시의 아름다움을 가질 수 없다. 도시공간적 측면에서 ‘다양성의 통일’ 개념과 동시에 좀 더 구체적인 역사 문화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하면 생명력 있고 가치 있는 도시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여야 한다. 원주라는 지역은 과거나 현재나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왔다. 치악산, 백운산, 배부른산 등의 자연환경과 강원감영 등의 문화 환경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원주혼(魂)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원주의 혼에 해당하는 이런 고유한 요소들은 우리들이 얼마나 배척하고 무시하여 왔는가를 되돌아봐야 한다. 자연환경을 도시공간으로 끌어들이고 도시공간의 문화적 요소를 자연과 접목시킴으로써 시민의 삶은 가치 있고 건강해질 것이다.

원주만의 색(色)을 만들어야
아무리 원주가 아름답다고 외쳐도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원주에 와서 ‘별 것 아니네’ 하면 의미가 없다. 그동안 원주를 다양한각도에서 키우고 발전시켜 왔다고 자부한다 해도 ‘볼 것이 없다’라는 냉정한 평가뿐이다. 수년전 중앙로 문화의 거리 조성을 놓고 논란을 벌일 때, 대다수의 시민들은 중앙로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행정적 절차만으로 혹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시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기란 한계가 많다. 다시 말하면 법적 한계를 넘어야 공공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주민의 이해와 설득, 그리고 유도(誘導)라는 방법을 통하여 접근이 가능하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개인이나 기업이 손해까지 보면서 공공의 목적을 위해 기꺼이 기부하기는 힘든 일이다. 도시공간의 전체적인 측면에서 개별 사항이 접근 되도록 해야한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원주 도심은 물론 도심 외곽지역도 주변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카이라인을 깨뜨리는 다양한 건물을 볼수 있다. 이젠 원주혼을 지키면서 원주만의 색(色)을 만들어 가는 여유와 의지를 가져야 할 때이다. 세계 어디를 보아도 자연환경을 깨뜨리고 그 도시의 가치를 창조한 곳은 한 군데도 없다.원주시와 지역주민의 협력이 건강한 도시로 가는 길 원주를 원주라는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고 다양한 민원에 대응하면서 ‘원주다운’ 그림을 그려가기 위해서는 행정의 틀을 벗어나 시민 모두가 참여하는 독보적인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여러 측면에서 보면 ‘원주는 하나’인데 원주를 다루는 부서는 수도없이 많다. 고유한 업무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도시공간적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각 부서 간 이견을 조정하고 협력하는 조정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민원에 대해서도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도록 주민과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서울이나 꾸리찌바는 도시디자인연구소를 통해 도시 전체의 그림과 방향을 설정하고, 수시로 검토하고 수정하는 단계에서 시민의 의견을 다양하게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원주도 ‘원주 도시디자인센터’ 같은 기구를 설치하여 소수의 접근이 아닌 전체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속적으로 시민에게 다가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시정을 공개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원주시청의 1층홀이나 시민들이 접근하기 좋은 도심의 장소에 ‘원주의 도시 발전방향’ 등에 관한 그림이나 자료를 상시 비치할 수 있도록 ‘원주 도시디자인 전시관’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원주의 지나온 과거를 볼 수 있고, 앞으로 바뀔 곳에 대한 그림이나 데이터를 게시하여 의견을 수렴하고 문제가 될만한 소지가 있는 것은 꾸준히 시민과 대화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통하여, 시민들의 신뢰를 쌓아 간다면 현재의 집단 민원이나 길가에 현수막을 설치하여 투쟁하는 일들은 최소한 사라지지 않을까? 시민과의 접근에서 민원 발생시 가능한 다양한방법을 통하여 해결하려고 하는 원주시의 의지와 주민의 협력이 이루어질 때, 원주는 건강한 도시로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것이다.
최재석 한라대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