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


5톤 트록과 함께 오늘도 달린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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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찬(30) 씨는 며칠 만에 원주로 돌아왔다. 늘 주차하는 장소에 화물차를 두고, 승용차로 갈아탄 후 귀가를 했다. 보통은 집에서 밀린 잠을 푹 자곤 하지만, 오늘은 저녁에 약속이 잡혀 옷만 얼른 갈아입고 다시 집을 나선다. 입추가 지나고선 해질녘 날씨가 퍽 선선해졌다. 해도 짧아져 하늘의 빛깔도 꽤 짙어진 참이다. 다들 슬슬 퇴근을 할 시간이다.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려는데 전화가 울린다. 덕분에 두어 번 인터뷰가 중단됐다. 화물차 일을 하며 가까이 알고 지내는 형님들이란다. 하소연을 할 데가 별로 없다 보니, ‘막내인 김병찬 씨는 인기(?)가 많다. “이 일은 28살에 처음 시작했어요. 4년째 제가 제일 막내죠.”

 

첫 업무는 평창에서 부산까지 양배추 운송

원래 김병찬 씨는 대기업 브랜드의 가전제품 설치기사로 일했다. 여러 사정이 겹쳐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막상 관두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고 했다. “어렸을 땐 운동을 했고, 딱히 배운것도 없었어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 동안 하던 일이 큰 차량을 운전하는 것과 짐을 싣고 다니면서 설치하는 것뿐이었으

, 자연히 화물차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좀 더 큰 차를 운전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출을 받아 다소 무리하게 화물차를 샀다. 5톤 트럭이었다.
 

처음이었지만 일거리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화물차어플리케이션이 있어요. 일정 금액 이용료를 내면 전국에서 화물차에 짐을 실으려는 사람들이 올린 글을 볼 수 있죠.”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대금은 얼마인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짐은 팔레트(화물 운반대)’로 몇 개가 되는지 꼼꼼히 확인을 하고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 일을 다녔다. 이렇게 일거리를 잡아 다니는 것을 일반짐을 한다고 하는데, 김병찬 씨도 6개월정도 일반짐을 했다. 그러나 차츰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며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벌이가 어렵게 되었고, 화물차를 처분할 생각도 했다. “아는 분이 일거리를 하나 줄 테니해 볼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더라고요. 채소를 운송하는 일이었는데,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걱정이 됐어요. 많이 힘든지, 준비물이 뭐가 필요한지 다 물어보고 도움을 받았죠.” 농작물을 싣기 적합하도록 적재함에 합판을 깔고, 비올 때도 작업을 한다기에 우비와 장화도 구입했다.

처음 작업한 것은 또렷이 기억난다. 양배추였다. 비가 엄청나게 오는 날이라 밭에 발이 푹푹 빠졌다. 한 발짝도 떼기가 힘들어숨을 헐떡이며 양배추를 날라다 화물차에 싣고 평창에서 부산의 청과물 시장으로 갔다. 멀기도 먼 길이었다. 본격적으로 농산물을 시작한 순간이었다. “보통 알선소에서 오더를 받아요. 작업반장의 연락처를 받아 통화를 하고, 밭까지 들어가는 거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밭에서 상차를 한 후 화주(貨主)가 써준 운송장대로 갑니다.”

 

서울·부산·대전 돌며 길 위에서 36개월

여름엔 보통 강원도 평창 등지에서 고랭지 채소를 취급하고, 날이 추워지면 전라도 남부에서 물건을 받는다. 목적지는 가지각색이다. 서울 가락동 시장, 부산 반여동 시장, 대전 노은동 시장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3년 반이 지났다. 덕분에 요즘은 좋은 채소를 골라내는 눈도 생겼다. “사실 길은 잘 몰라요, 다 내비게이션을 찍고 다니죠. 대신 시장은 항상 가는 곳이라 전국 어디든 지도 없이도 갈 수 있습니다.” 전국권이라고 해도 밭에서 큰길까지 나오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릴 뿐, 길어도 예닐곱 시간이면 다 갈 수 있다. 한 번 일을 할때마다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다섯 시간 내외. 결코 짧지는 않지만,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면 멈추지 않고 한번에 이동을 마치려고 한다. 출발 전에 화장실 등 모든 볼일을해결한다. “계속 집중을 해서 운전을 해야 하는데, 도중에 맥이 풀리면 흐름이 끊기더라고요.” 운전도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흐름이 있고, 집중력을 요한다. 길 위는 항상 위험하기 때문이다.새벽같이 상차를 하고 길을 떠나기 때문에 피곤과 싸우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기사들마다 졸음을 쫓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는데, 김병찬 씨는 주로 음악을 크게 튼다. 요즘은 힙합가수 도끼(DOK2)’나 어쿠스틱 밴드 볼빨간사춘기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친구들과 전화 통화도 많이 하지만, 근무 시간이나 밤늦은 시각엔 아무래도 미안해서 선뜻 걸기가 어렵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적성에는 잘 맞는 것 같다. 주말이나 휴가철 등 교통체증이 심할 때만 아니면 그다지 힘든 일은 없다. 차에 어지간한 물품은 갖춰져 있고, 요즘은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 웬만하면 샤워실이 마련돼 있어 불편한 점도 없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늦은 시각이기 때문에 잠은 주로 차에서 자는데, 잠을 자는 동안 짐칸은 장터의 일부가 된다. ‘산지직송이 중요한지라, 농산물 시장에서 화물차에 실어놓은 그대로 판매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차가 계속 끄덕끄덕 움직여서 잠을 잘 못 이뤘는데, 요샌 적응이 되어 괜찮아요.” 말그대로 길 위의 생활이다.

 

불규칙한 생활패턴 결혼해서 정착하고 싶어

잘 맞는다곤 해도 천직이란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다. 불규칙한 생활 패턴에, 몸을 많이 쓰다 보니 장기적으로 하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가끔 가다 연세가 있는 기사들이 운전 중에 심정지가 왔다거나, 저혈당으로 쓰러졌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혼자만 다치고 차만 망가지면 차라리 다행이죠. 하지만 길 위에 혼자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돈을 좀 더 벌면 안정적인 다른 일을 하고 싶다. 지금으로선 또래의 회사원들보다 벌이가 조금 나은 편인 것 같지만, 불안정감은 계속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결혼해서 정착을 하는 것이다. “생활이 불규칙해서인지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더라고요. 연애를 하고 싶어도 이 일을 하면서는 만날 자리도 없고요. 회사를 다니면 회식 자리라도 있고, 취미생활이라도 할 텐데요.” 정해진 여가 시간이 없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를 시켜 달라고 청하기도 난감하다.

사람과의 관계도 난관이다. 모두 개인사업자이지만, 언젠가는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 술을 마시고 뒤에서 얘기를 하거나 최근에는 화주와의 문제도 겪고 있다. 화물을 운송했는데, 시장 쪽에서는 물품에 문제가 있어 대금을 전부 지급하지 않았고, 화주 쪽에서는 사정이 어려우니 기다려 달라고만 말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화물을 운송했는데 대금을 지급받기 전 회사가 망하는 일도 있다고 들었다. “법을 전공한 친구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조언을 구했어요.”
 

그래도 김병찬 씨는 현재로선 만족스런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람이라고 할 것까지는 잘 모르겠어도, 가끔 흥미롭게 여겨질 때가 있다.

식당에서 반찬을 먹을 때, 혹시 내가 갖다 준 게 아닐까 생각해보는 거죠. 서울 사람들이 내가 옮겨 온 채소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신기해요.” 자꾸 시계를 확인하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이튿날 새벽에 일을 가야 한다는 대답이다. 곧 친한 친구를 만나는데 술 한 잔도 못할 것 같단다. 5시까지 평창에 있는 알선소에 가려면 3시에는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지 않을 때엔 하루의 삼분의 이 정도를 죽은 듯이 자며 피로를 푸는데 사용하곤 하지만, 이번엔 시간이 없으니 큰일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물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처럼, 젊고 튼튼할 때 많이 일해두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안정된 내일을 꿈꾸며, 오늘도 김병찬 씨는 짐을 가득 싣고 길 위를 달린다.

. 이새보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