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


길 위의 방랑자, 길 위에 머물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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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판부면의 작은 소롯길 끝에 정겨운 집 한 채가 있다.'
크레파스로 쓴 듯한 대문격의 ‘길배움터’가 방문자를 맞이한다. 그곳에 여행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이 있다. 이슬기 길터여행협동조합 사무국장.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반갑게 맞아준다. 작은 체구의 이 국장은 세계곳곳을 다니며 여행에 눈을 떴다. 이 국장에게 여헹에서 얻는 의미와 길터여행협동조합에 대해 들어봤다.

여행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했나요?
1996년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선배 언니가 필리핀에 있었는데 그곳에 2주 정도 있었던 것이 첫 여행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1999년 YMCA의 프로그램이었던 국제문화청년교류(ICYE)로 인도에서 1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여행에 눈을 뜬 것 같아요. 그 뒤로 유럽과 중국, 일본, 네팔, 캄보디아, 캐나다 등 많은 곳을 다녔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나라는 어디였나요?
이런 질문 많이 받아요. 나라마다 모두 특색이 있어서 딱히 어디가 가장 인상깊었다고 말하기가 힘든 것 같아요. 여행을 가고자하는 분들의 선호도에 따라 경험을 토대로 추천은 해 줄 수 있겠지만 어느 나라가 정말 좋았다고 딱 잘라 말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을 꼽는다면 인도와 네팔 정도일 것 같아요.

인도는 많은 사람들이 가고, 또 가고 싶어하는데 인도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도대체 이게 뭐지?’ 하면서 빠져드는 나라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질서하고 개념도 없어 보이잖아요. 우리나라 같으면 노발대발해야 할 상황들이 많은데 인도 사람들에게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가 노 프라블럼(noproblem)이거든요. 예를 들면 기차가 3~4시간씩 연착이 되더라도 그 사람들은 아무 문제없다고 말해요. 우리나라 같았으면 난리가 날 일인데 말이에요. 그런데 여행자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4시간씩 연착이 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더라고요. 전혀 조급해할 필요가 없는거죠. 그런 생각이 저도 들더라구요. 인도를 여행하면서 고생을 하고, 약간의 어떤 사기나 속임수에 당해도 나중에는 재미있더라고요. 그들의 무질서함 등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보면서 너무 많이 누리면서 잘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고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까요?

길터여행협동조합에서는 어떤 것을 주로 하나요.
다른 프로그램들이 꽤 있는데요. 중·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기존 수학여행과 다르게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이죠. 2015년에 진부고등학교가 기존 수학여행 틀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함께 기획을 했는데 반응이 엄청 좋았어요. 세월호 이후 많이 소규모가 됐지만 여전히 100명 이상의 아이들이 똑같은 버스를 타고,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것을 보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100명 이내의 작은 단위로 아이들이 주체가 되는 수학여행을 기획했어요.
아이들이 선택을 하고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진부고 학생들과는 제주도로 갔는데 제주의 속살 들여다보기 등 각각 다른 마을에 가서 요리 체험도 하고, 조랑말도 타고, 그 지역의 화가를 만나서 그림도 그리고 하는 식으로 진행을 했지요. 또 테마투어도 있는데 자전거 라이딩, 해녀 물질 체험, 한라산 등반, 바다 체험 등 다채롭게 운영했어요. 아이들이 처음과 달리 굉장히 좋아해요.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모님과 다시 한 번 와 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해요. 그만큼 의미 있는 여행이 되는 것같아요.

길터여행협동조합과는 어떻게 인연이 되었나요?
사실 제 전공은 사회복지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3년 가까이 천안에 있는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청소년 파트쪽 일을 했어요. 그런데 3년 정도 일을 해보니까 너무 어렵더라고요. 저의 성향을 봤을 때 이쪽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와중에 인도 프로그램 소개를 받아 인도에 가게 되었어요. 그 뒤부터는 1~2년 돈 벌면 나가서 쓰고, 또 돈 벌고 나가서 쓰는 것이 반복되더라구요. 오죽했으면 친구들이 전화를 하면 한국이냐고 물어볼 정도였지요. 그러다가 한알학교를 오게 되면서 길배움터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어요.

최근에 진행된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나요.
지난 7월 27일부터 8월 2일까지 6박 7일동안 국토 종단을 했어요. 부산에서 원주까지 올라오는 것이었어요. 매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12명에서 15명 정도가 참여하는데 올해는 20명이 참가했어요. 여자 친구들도 5명이나 참가를 했고요. 아이들이 고개를 넘어갈 때는 죽을 것처럼 힘들지만 막상 해보면 아무것
도 아니라고 말해요. 국토 종단을 하고 확 바뀐 아이도 있어요. 그 친구는 국토 종단 참가하기 전에는 학교에서 말도 잘 안하고 대인관계도 힘들었다고 해요. 그런데 국토 종단을 하고 난 뒤에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고, 학교일도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그러더라구요. 이제는 학교에 없어서는 안 될 정도라고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합니다.

어떨 때 보람을 느끼나요.
방금 말한 것처럼 아이들이 좋은 모습으로 변할 때 기분이 좋아요. 좋은 쪽으로 변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변화들이 여행의 힘인 것 같다고 선생님들이 말해요. 아무래도 힘든 일을 스스로 해내고 나면 많이 달라지잖아요. 국토 종단 길잡이들은 출발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중간에 힘들어서 포기를 해도된다’ ‘지금 가기 싫으면 안가도 된다’고 말해준다고 해요. 하지만 아이들은 죽을 것 같고, 힘들어 미칠 것 같아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무리한다고 해요. 그 일이 끝났을 때 성취감은 말로할 수 없을 정도잖아요. 아이들도 그 사실을 아는 거죠.

앞으로의 계획은?
처음에는 길배움터 여행 대안학교였어요. 그런데 처음 시작한 길배움터 여행대안학교 1기는 마무리가 된 상태입니다. 아이들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죠. 비인가 대안학교들은 문을 많이 닫는 편입니다. 아이들이 없다보니까 운영을 하는데도 벅찬 거죠. 길터여행협동조합 법인 사무국은 주로 해외 공정여행, 자전거여행, 수학여행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여행대안학교로 시작했지만 사정이 어려워 길터 여행만 하다가 지금은 또다시 조직을 넓혀가고 있어요. 조직을 넓혀가는 데 힘을 보태야죠.


글.사진. 원상호